+ 워낙 강행군이라 스탭들의 불만도 많았을 텐데.
= 불만이 많이 쌓였을 텐데 밖으로 표출한 적은 없다. 촬영분량 중에 진립이 별장 가남에게 “그토록 고향에 가고 싶은데도 막상 고향 생각이 잘 나지 않아요. 그저 이 끝도 없는 행군이 어서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고 있던 스탭들이 눈시울을 적셨을 정도로 힘들긴 했다. 사막의 경우 기온이 50도 정도 되는데 더위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하니 탈진한 스탭도 많았다. 많이 지쳤을 것이다.
+ 그럴 땐 잘 다독이고 그랬나.
= 절대 그렇지 않다. 다독여서 어떻게 영화를 찍겠나. 내가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인다며 시간을 낭비한다면 일 끝나고 오히려 그들이 잘못했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이 힘들 때, 독려한다고 뭘 하는 게 아니라 조 이사와 내가 먼저 뛰었다. 사실 아닌게아니라 꼭 그래야만 했나 하는 반성도 든다. 좀 심하긴 심했는지 나이 50쯤 된 중국 제작부장이 우리 스탭을 끌어안고 울었다고 하더라. “너네 감독이 인간이냐”면서…. (웃음)
+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 힘들었다기보다는 좀 다른 성격의 순간이 있었다. 영화를 시작한 지 15년쯤 된 것 같은데, 아직까지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힘은 들지만 늘 즐거웠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토성 촬영에 들어간 지 한달쯤 지났을 때인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냥 아무 이유없이 촬영장에 나가기 싫더라. 어린애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바닷가 호텔에서 즐기러 온 것이면 어떨까 하는, 내가 처한 이 모든 상황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런 통보없이 방에 혼자 있었다. 어쨌거나 신선한 하루였다.
+ 비용과 시간이 당초보다 늘어나 부담이 되진 않았나.
= 물론 부담이었다. 찍다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속도로 찍지 못하겠더라. 애초 2천컷 정도를 쓸 것으로 생각해 넉넉잡아 2500컷만 찍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늘 내가 짜놓은 콘티보다 많이 찍게 됐고, 하루에 찍기로 했던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하면서 길어졌다. 사극은 분장, 말, 소도구, 액션 이런 게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아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무사>와 같은 여건이라면 한 감독으로선 최고를 맛본 것 같다. 촬영 도중 언덕에서 모래 일으키며 말들이 달려오고, 오아시스에서 전투를 벌이는 배우들이 뒤엉키는 모습을 볼 때 “야, 이거 꿈이 이뤄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 후반작업은 어땠는지.
= 불만족스러운 요소는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한 것 같다. 편집은 좀 쫓겨서 했지만 사운드에 관해서는 원이 없다. 특히 사기스 시로의 음악은 마음에 쏙 든다. 나는 시로에게 동양음악인지 서양음악인지 국적이 없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일본에서 태어났음에도 유럽을 돌며 살고 있는 무국적자니까. 또 가슴에 닿는 듯한 민요가락과 애잔한 피리소리를 넣어달라는 주문도 했고, 생북소리를 많이 넣어 흥분감과 전쟁의 기운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결과물은 너무 좋다.
+ 영화를 찍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찍으면서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한 장면의 경우, 그 신이 나오기 10분 전부터 짜증이 난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우리는 10개월 정도 준비하고 했는데 막상 중국에 가보니까 더 시간을 들여 준비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세분화된 일의 진행방식이라든가 일의 효율성을 획득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다.
+ 이 영화를 통해 ‘무사’란 어떤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 내가 생각하는 무사의 정신은 어떤 대의명분이 옳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신분상 ‘무사’라는 지위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근엄함이나 멋에 관해선 의심해왔다. 어떻게 사람이 늘 그런 고매한 생각을 갖고 살 수 있나. 이 영화에는 신분상 무사가 아닌 사람이 절대다수 등장한다. 무사가 아니긴 하지만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에는 무사처럼 행동할 수 있었으면 했다. 또 가식적이고 거룩한 명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소한 이유라거나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고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애초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무언가 결정을 내리게 되고 그 결정을 내린 순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관객에게 감히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객관적으로 볼 때는 사소한 것이지만 자신을 감동시키고 움직였던 작은 대의명분에 기꺼이 목숨을 던진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닮아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친근감을 느껴줬으면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치한 영웅주의 같은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늘 나를 흥분시키고 감동시킨다.
글 남동철 기자 [email protected]
문석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정진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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