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월 <비트>의 편집실에서 출발한 <무사>는 김성수 감독이 그 오래 전부터 꿈꿔오던 프로젝트였다. 그가 당시 프로듀서였던 조민환 싸이더스 이사에게 펼쳐보인 이 영화의 내용은 “여러 명의 남자들이 극한 상황에서 조그마한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이야기”였다. 그로부터 3년하고 몇달이 지난 뒤 김성수 감독은 극중 주인공들처럼 중국 대륙에서 500명이 넘는 남자, 그리고 여자들과 함께 <무사>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가며 험난한 5개월의 여정을 버텨냈다. 이후 6개월이 넘는 후반작업까지 포함하면 <무사>는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눈물과 환희의 반복 속에서 그와 동고동락했던 셈이다. 개봉을 앞둔 그의 표정에서 긴장이나 기대 외에 허전함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 완성된 작품을 보니 어떤가. 애초의 생각과 비교한다면.
= 처음 시작할 때는 항상 걸작을 꿈꾸는데 나올 땐 늘 졸작이 된다. (웃음) 영화를 만들고서 편집부터 후반작업 내내 영화 전편을 보통 300번 정도를 보게 되는데 <무사>는 한 500번은 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좀 지겹다.
+ <무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영화를 시작할 무렵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나 <철십자 훈장>을 굉장히 좋아했다. 내가 만약 극영화 감독이 된다면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겠지, 하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감독이 된 뒤에도 그런 영화를 만들려면 너댓 작품은 만들면서 기량을 연마한 뒤에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무사>는 1997년 3월쯤 <비트> 후반작업을 할 때 프로듀서였던 조민환 이사에게 내가 이런저런 영화를 꿈꾸고 있다는 생각을 밝힌 데서 시작됐다. <태양은 없다> 후반작업할 때는 이야기의 골조를 세웠다. 그리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조 이사에게서 작업을 시작하자는 연락이 왔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역사책과 논문을 보고, 부지런히 중국답사도 다녀오곤 하면서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게 됐다. 답사를 시작했던 1999년 10월부터 촬영이 끝난 2000년 12월 말까지 서울에 있었던 기간은 2달이 채 안 될 거다.
+ 구로사와와 페킨파 영화에서 끌렸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
= 힘이 좋다는 것이다. 오늘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한 남자가 꿈꾸는 이야기이긴 한데, 어렸을 때부터 극한 상황이나 드라마틱한 상황에 빠져 있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특히 페킨파 영화는 선인도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 구도나 어떤 사람이든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밑바닥을 드러낸다는 점이 좋다. 의 경우는 <황야의 7인>을 극장에서 보고 너무 좋아했는데, 그 영화의 오리지널이 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게 됐다. 힘이 넘치고, 상황에 몰리면서 사람들에게서 에너지가 솟아나는 게 너무 좋더라.
+ 이야기를 고려 말로 설정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인가.
= 이야기의 기본적인 틀은 대충 중국의 사막 같은 오지로 들어간 일단의 무리가 거기서 낙오돼 갈 데가 없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여러 명의 남자들이 다들 뭔가 끝내주는 특기가 있다, 이런 식으로 잡아놓았었다. 그런데 시나리오 쓸 당시 1∼2년 전부터 고려 말 역사를 재조명하는 연구가 많이 나왔다. 관련된 논문들을 읽어봤는데 어느 한 논문에서 공민왕 시해사건 뒤 고려에서 명나라 사신이 살해됐고, 우리가 그것을 해명하려고 조공단을 보냈는데 그중 한팀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는 기록이 나와 흥미로웠다. 그것을 토대로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 주인공으로 처음부터 정우성을 염두에 둔 것인가.
= 이미 창잡이 여솔 역으로 그를 생각했었다. 우성이에게도 그렇게 말을 해뒀다. 창잡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 나는 예전 중국영화를 보면서 창이 그렇게 멋있었다. 장철의 영화 중 에서 적룡이 다리 위에서 창을 들고 싸우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렇게 좋았다. <삼국지>의 조자룡이나 관우도 창은 아니지만 자루가 긴 도를 쓰고 하지 않나. 난 무협지에서 멋있는 애들은 다 창을 쓰는 애들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웃음)
+ <와호장룡>을 비롯해 무협영화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영화는 사실적인 액션 위주다.
= 무협지풍의 무협영화도 생각한 적 있다. 그러나 어려울 것 같았다. 액션이 어설픈 편인 중국의 TV시리즈만 봐도 굉장한 노하우와 테크놀로지가 필요하다고 느껴왔다. 하물며 이런 액션을 당장 영화에서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정두홍 무술감독과도 늘 피아노줄을 이용한 액션을 해봐야겠다고 말은 해왔지만, 경험이 일천한 상태였다. 또 페킨파 얘기를 했듯 <무사>의 액션은 그런 생생한 전투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 <비트>의 저속촬영, <태양은 없다>의 고속촬영, 기획단계에서 포기한 다른 작품에서 시도하던 와이드 숏 등이 모두 <무사>를 위한 것이었다는데.
= 고속촬영은 많이 들어가 있고 저속촬영도 임팩트를 주기 위해 군데군데 사용했다. 핸드헬드 카메라도 사용했고, <비트> 때처럼 타이트한 카메라도 좀 썼다. 그것을 어떻게 쓰겠다 해서 쓴 것은 아니고 그 신의 성격에 부합한다고 해서 쓴 것이다. 사실 여러 가지 테크닉을 시도해 습득을 하면, <무사> 같은 영화를 만들 때 그 테크닉이 녹아서 자유롭게 구사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 그렇지 않았다. 테크닉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과 어떤 상황을 전개하고, 이를 적확한 콘티로 짜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많이 안다고 해서 콘티를 잘 짜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다 해봤다고 해서 꼭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 이번에도 2900여컷이나 된다.
=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편집에서 많이 잘라내긴 했지만 이번엔 롱테이크도 많이 찍었다. 사막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의 경우 컷의 길이가 짧으면 느낌을 주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굉장히 길게 찍었다. 컷이 많아진 것은 반응 숏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러 명의 배우들을 오랫동안 매일 보다 보니까 그 사람의 시나리오 속 비중과 무관하게 그들이 모두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그러다보니 예를 들어 극중에서 장쯔이가 무슨 얘기를 했다고 하면 그녀와 관련된 정우성이나 주진모의 숏을 찍고 넘어가야 하는데 나는 그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은 왜 반응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급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을 골고루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 이전 영화에 비해 멜로가 그리 강하지 않을 것 같다.
= 편집과정에서 좀 들어내긴 했지만 분명 멜로적인 요소는 있다. 물론 많지는 않은데, 멜로라는 게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거지 남자들이 목숨을 걸고 촌각을 다툴 때 멜로적인 감정에 푹 빠진다는 게, 좀 고려인의 기상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웃음)
+ 중국스탭과의 작업은 어땠나.
= 상투적인 얘기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았다. 처음에 갈 때 한국이나 홍콩쪽에서 중국스탭들과 함께 일할 때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관해 듣고 갔다. 한데 막상 접하고 나니 굉장히 순박하더라. 내가 어릴 때 보던 어른들의 모습 같았다. 일하는 방식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실력도 좋다. 앞으로 중국사람들과 더 자주 일하고 싶다.
▶ <무사> 제작, 그 천일간의 기록
▶ <무사> 제작일지 (1)
▶ <무사> 제작일지 (2)
▶ <무사> 제작일지 (3)
▶ 숫자로 본 <무사>
▶ <무사> 등장인물
▶ <무사> 스탭
▶ <무사>가 달려온 길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1)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