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2001, 중국 대륙의 모래바람 뚫고 김성수 감독의 <무사>가 태어나기까지, 그 험난한 여정의 기록
600여년 전 한 무리의 고려인들이 원말 명초 혼란기의 중국 대륙에서 자취를 감췄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그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사>는 공식적인 역사서에서 물음표로 남겨둔 여백에서 출발한 영화다. 김성수 감독은 여기서 난생처음 사막의 모래폭풍에 휩싸인 사람들을 떠올렸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인간 한계를 넘는 한발한발을 내딛는 사람들, 그들은 오래 전 구로사와 아키라의 와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같은 영화들에서 자신을 매혹시켰던 존재의 극단에 있는 인간이었다. 어느날 아침 수백명이 바삐 움직이는 <무사> 촬영장에서 그는 자신의 꿈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걸 봤다. 역사가 눈길을 돌린, 실패한 자들의 전쟁을 복원시키는 작업이 중국의 낯선 풍광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었다. <비트> <태양은 없다>에서 연달아 김성수 감독의 파트너였던 조민환 프로듀서, 김형구 촬영감독, 이강산 조명감독, 정두홍 무술감독, 배우 정우성 등은 김성수의 비전을 필름에 담는 데 동의했다. 자신들에게 닥칠 고난을 각오한 그들에게 5개월간 1만km를 횡단하는 <무사>의 여정은 도전해볼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0년 8월6일 크랭크인해서 12월22일까지 112회 촬영에 4천컷을 찍은 무리한 일정은 <무사> 제작진을 곧잘 한계상황에 몰아넣었다. 40도가 넘는 모래사막에서 여름을 보내고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혹한 속에 한달 동안 전투장면을 찍어야 했던 그들은 때로는 일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때로는 오한과 구토로 하루 3∼4시간밖에 허용되지 않는 밤잠마저 설쳐야 했다. 나중에 편집과정에서 들어낸 부분이지만 안성기씨가 “그토록 고향에 가고 싶었는데 막상 고향 생각이 잘 나지 않아. 그저 이 끝도 없는 행군이 어서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야”라는 대사를 할 때 다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후일담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 강행군이었던 것이다. 프로듀서 조민환씨가 쓴 제작일지는 시대극을 만드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한국영화가 미지의 땅에서 먼 과거를 불러들여 확보한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영화가 공개된 뒤 비로소 알 수 있겠지만 제작진의 수고만큼은 따로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한 개인의 상상력에 기반하는 예술이지만 수십, 수백명의 피와 땀이 직조하는 수공업적 노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편집자
▶ <무사> 제작, 그 천일간의 기록
▶ <무사> 제작일지 (1)
▶ <무사> 제작일지 (2)
▶ <무사> 제작일지 (3)
▶ 숫자로 본 <무사>
▶ <무사> 등장인물
▶ <무사> 스탭
▶ <무사>가 달려온 길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1)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