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배에 대한 또 다른 해석, <다빈치 코드>
아는 그림도 다시 보자. 전세계를 휩쓴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하는 <다 빈치 코드>는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다 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서 시작, <최후의 만찬>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다빈치 코드>의 주장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기독교 단체들의 엄청난 항의를 받기도 했다. <다빈치 코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속 스케치와 같은 모습으로 죽은 루브르의 큐레이터 소니에르에게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는 그림과 애너그램에 걸쳐 있다. 소니에르의 시체 옆에 있던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라는 문구를 애너그램으로 풀어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The Mona Risa)’가 된다는 건 놀라움의 시작일 뿐이다.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인디아나 존스>는 성배가 예수의 피를 받은 잔이라고 했다. <다빈치 코드>는 성배가 여자라고 주장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그런 암시를 주기 위한 그림이라는 것이 <다빈치 코드>의 설명.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자세히 보면 예수의 오른 쪽에 앉은 인물이 여자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흐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과 모아쥔 섬세한 손, 그리고 살짝 솟은 가슴이 증거다.) 예수가 결혼했으며, 아내가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것. 그림으로 보면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는 거울에 비친 듯한 영상으로 몸을 반대쪽으로 기울이고 있으며, 옷 색깔 역시 음과 양을 상징하듯, 거울에 비친 듯한 색 배치로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V자 모양의 공간이 생기는데, 이 V는 성배와 잔, 여자의 자궁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게다가 두 사람 몸의 실루엣을 보면 그림 한가운데에 M자를 만드는데, 이는 결혼(Matrimonio)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배에 관한 전설은 왕족의 피에 관한 전설이 되고, 선배는 그리스도의 피를 담은 잔, 즉 왕족의 혈통을 품은 여자의 자궁(마리아 막달레나)이 된다. 성경과 <다빈치 코드>의 주장 중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는지는 각자의 믿음에 달린 문제겠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참혹한 살인사건 예보, <텔 미 썸딩>
고어 스릴러물 <텔 미 썸딩>에서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한 그림은 두 점이다. 일단 영화가 시작할 때 벽을 따라 훑듯이 보이던 그림이 해럴드 다비드의 <캄뷰세스 왕의 재판>이다. 감독이 영화의 제작 동기가 되었다고 밝힌 그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채수연(심은하)의 별장에 걸려 있던 그림은 존 에비릿 밀레의 <오필리아>에서 힌트를 얻어 그린 것이다. 불행히도, 온갖 그림과 단서와 사진들이 등장함에도 <텔 미 썸딩>의 미스터리는 풀릴 줄을 몰랐지만, 그림이 사건으로 연결되는 이미지만큼은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캄뷰세스 왕의 재판> 헤럴드 다비드 캄뷰세스 왕은 기원전 6세기에 재위한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전제군주였으며 그림 속에서 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당하는 희생자는 시삼네스라는 판사로 추정된다. 흐르는 피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고 화폭에 담는 이 사실주의적 화풍은 피부를 벗겨내는 사나이에 이르면 섬뜩하기 그지없다. 이 그림은 모든 판사와 시참사들에게, 영원히 타락하고 부패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부정부패에 내려지는 인간의 형벌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그림이 <텔 미 썸딩>에 등장한 것은 앞서 말한 그림의 맥락과는 관계가 없으며, 그림 속 광경 같은 참혹하고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예고하는 뜻이다. 특히, 한 사람의 살인에 여러 사람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상처받은 영혼, 상처받은 여인, <파란 대문>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은 <나쁜 남자>와 에곤 실레의 그림 한점을 두고 닿아 있다. 창녀이거나 자신이 창녀가 될 줄 모르는 여자가 욕망하는(혹은 가까이 두는) 그림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에곤 실레의 <흑발 소녀의 누드>. <나쁜 남자>에서 선화가 사창가의 깡패 두목 한기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써주는 이유는 에곤 실레의 화집을 찢었기 때문인데, 이때 찢은 그림이 바로 <파란 대문>에도 이미 등장했던 <흑발 소녀의 누드>. 실레 작품 속의 여체는 한껏 뒤틀린 모습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미적인 기능을 상실한 고뇌와 죽음의 상징이다. 실레의 시선으로 여과된 여체는 파괴적인 고뇌로 가득한 정신세계를 표출한다.
<흑발 소녀의 누드> 에곤 실레 그림을 그리는 창녀 진아가 들고 다니는 그림은 28살에 요절한 화가 에곤 실레의 <흑발 소녀의 누드>이다. 진아는 <흑발 소녀의 누드>가 담긴 액자를 모래사장 위에 세워두고 하염없이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중요한 점은, <흑발 소녀의 누드> 속 여성의 모습이 진아와 매우 닮았다는 사실이다. 에곤 실레가 19살의 나이에 개인 화실을 차린 뒤 소녀 창녀들을 모델로 누드화들을 대량으로 그렸던 시기에 탄생한 이 그림 속 영혼이 상처받은 여인은 바로 진아를 상징한다. ‘새장 여인숙’에서 매춘부로 일하며 삶의 희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진아의 모습을 대변하는 이 그림은 이후 <나쁜 남자>에서 한 여대생을 진아의 운명으로, 매춘부의 운명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 구실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