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노래 하나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사람을 물건으로 본다는 거예요. 누가 횡단보도를 가다 넘어져도, 그 사람이 물건처럼 보이기 때문에 일으켜 세워주지 않고 그냥 간다는…. 요즘 애니메이션도 사람을 물건처럼 다루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싫어서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7월21일부터 일본에서 상영중인 ‘건강한 애니메이션’ <아리테 공주>가 SICAF에 초청, 상영됐다. 감독 가타부치 수나오는 경쟁장편부문의 심사위원까지 맡아 서울을 찾았다. <아리테 공주>는 보는 사람마다 “공주님은 어디 계시지?” 하고 묻게 되는, 전혀 공주 같지 않은 어느 공주의 이야기. 성탑에 갇혀 살다 사기꾼 마법사에게 시집보내진 어린 공주가 마법사에게서 탈출하여 늘 꿈꾸던 대로 세상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대지에 발디디고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가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힘있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매우 따뜻하고 진실한 작품이다. 자극적인 요소라곤 전혀 없는 이 작품은 일본에서 흥행실적은 저조하지만, 감독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적은 인원이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든 마이너작품”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많은 관객이 보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꾸준히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이 작품은 ‘스튜디오 4°C’라는 일본의 디지털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제작되었고, 1992년 기획된 이래 9년 만에 완성되었다.
가타부치 수나오 감독이 애니메이션에 처음 참여한 것은 학생시절,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였다. <명탐정 번개>를 만들 때,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화과 학생 중 누군가에게 각본을 쓰게 할 요량이었는데, 마침 그때 영화과 학생이던 가타부치 수나오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1일 특강강사로 초청할 것을 학교에 건의해놓은 상태였다. 강의차 학교에 온 미야자키는 가타부치 수나오를 발탁, 각본을 쓰게 하고 연출조수까지 삼은 것이다. 이후 그는 TV시리즈 <명견 래쉬> 연출, <마녀배달부 키키> 연출보 등을 맡으며 동화적 서정이 살아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4°C가 만든 옴니버스애니메이션 <메모리즈> 가운데 오토모 가쓰히로가 감독한 3번째 이야기 ‘대포의 거리’에는 연출로 참여해 20분의 이야기를 1컷에 담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다.
<아리테 공주>는, 그에게 매우 특별하다. 애니메이터가 된 지 25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만들어낸,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TV시리즈물을 만들 때는 없었던 자유를 그는 스튜디오 4°C에서 작업하며 맘껏 누렸다고. 애정을 쏟은 이 작품에서, 그가 가장 주의한 것은 ‘색깔’이었다. 원작인 동화책 <슬기로운 아리테 공주>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 처음 떠올렸던 색깔들을 그는 그림에 재현하려 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기자신을 존중했으면” 하는 감독의 마음이 진중하게 담겨 있는 <아리테 공주>. 이 작품은 중세 유럽의 성곽과 마을을 배경으로 하면서, 부드럽고 예쁜 색깔들로 가득 차 있다. “심장 박동같이 쿵쿵거리는 소리를, 알지 못하도록 그러나 언제나 들리게” 한 음악 역시 <아리테 공주>가 지닌 건강한 서정성을 잘 떠받쳐준다. 어머니의 심장소리가 아이에게는 가장 훌륭한 음악이듯, 그는 <아리테 공주>가 “현실에 부닥쳐 애먹는 사람들이 보고 힘을 낼 수 있는 영화였으면” 한다고. 심사위원으로서는, 좀더 많은 작품들이 경쟁에 부쳐져 SICAF가 풍성한 영화제가 되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글 최수임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오계옥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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