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무섭고 흉악하고 잔인한 귀신이나 유령, 원혼이라 해도 굳게 마음먹은 사람만은 못하다. 귀신보다 겁나는 인간들이 빚어내는 공포.
<검은집>
감독 신태라 출연 미정
여보세요, XX보험 OO지삽니다. 제 이름요? 저도 아직 잘 모릅니다. 아직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았다나봐요. 하여간 전화 거신 용무가… 아하, 제가 지금 공포에 떠는 까닭이요? 제가 맡은 일에 관해 들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저는 보험회사에서 사망보험금 사정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사정이란 말에 민감하신 분들, 떽! 그러니까 저는 사망보험에 가입한 고객이 사망했을 경우, 이상한 점이 없나 파악해서 보험금 지급을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죽음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뒷골이 오싹할 때가 있죠. 그래도 이번만큼 무시무시한 적은 없었습니다. 얼마 전, 한 고객이 저에게 문의할 게 있다면서 집으로 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집으로 갔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고 굉장히 어둡더라고요. 주인 아저씨가 있었는데, 제가 오니깐 아들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하라고 했어요. 아들이 있는 방에서 아무런 소리가 안 들리자 그 사람은 저보고 아들 방에 가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들 방의 문을 연 순간…. 전 지금 생각해도 다리가 달달 떨리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 아들이 목을 매단 채 죽어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직감했습니다. 그 남자는 아들을 살해한 뒤 보험금을 타려는 비정한 아버지라고요. 희한하게도 사건을 의뢰받은 경찰은 미적거리기만 하고, 이 남자는 왜 보험금을 안 주냐며 매일 찾아옵니다. 혹시 사이코패스란 말을 아십니까. 겉보기엔 정상인데 알고 보면 이상성격자인 사람 말입니다. 전화상이니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궁금하시면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가 쓴 <검은 집>이란 소설을 읽어보셔도 됩니다. 물론 제가 겪는 일은 한국에 맞게 바뀐 상황이란 점을 염두에 두시고요. 그리고 당분간 전화 마십쇼. 곧 촬영에 들어가니깐요. 그럼 올해 말에 뵙겠습니다.
<스승의 은혜>
감독 임대웅 출연 오미희, 서영희, 이지현, 여현수
호호호, 이 시골집에 오늘 제자들이 찾아왔어요. 아마 16년 만일 겁니다. 미자야, 맞니? 우리 미자부터 소개할게요. 나 박여옥이 건강이 안 좋아져서 다리를 못 쓰게 돼 교단에서 물러난 뒤로 미자는 죽 나를 돌봐줬어요. 정말이지 고맙게 생각해요. 근데 미자 네 이년, 지금 나 계단에서 떨어뜨리려는 건 아니겠지? 호호호, 농담이에요. 아이고, 드디어 애들이 왔어요. 반장이었던 세호랑 부반장이었던 은영이는 결혼한다지 뭐예요. 통통했던 순희는 몰라 보게 달라졌고, 맨날 축구공만 갖고 놀았던 달봉이는 다리가 안 좋은가봐, 쯧쯧. 그리고 내가 끔찍하게 아꼈던 명호도 왔군요. 그리고 쟤는 누구지? 정원이? 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따뜻한 가르침이 그리워서 찾아왔나봐요. 어머머머… 근데, 너희들 왜 말투가 그러니? 아니, 이 버릇없는 것들 말 좀 들어보세요. 세호와 은영이는, 내가 얘들 집이 가난하다고 심하게 구박했다는군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김봉두 선생처럼 하디? 순희는 살쪘다는 내 놀림 때문에 성형중독과 거식증에 걸렸다 하고, 달봉이는 내가 체벌을 가해서 인대를 영영 못 쓰게 됐고, 명호 어머니는 나 때문에 정신병자로 몰렸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정원이 쟤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계속 도끼눈을 뜨고 지랄이래. 맘대로들 해봐. 나 박여옥, 아직 죽지 않았어. 근데 저기 쟤는 왜 엎어져 있고 그래. 고추장이라도 쏟았나? 꺄아아악~. 사람이 죽었어요. 아아악~. 또 하나가 죽었어요. 그리고 또…. ‘사랑은 언제나 더 큰 사랑을 부르는 법’이라고 가르쳤는데, 얘들은 그것을 ‘증오는 더 큰 증오를 부른다’고 알아들었나봐요. 하여간, 무서워요. 대체 누구니, 범인은? 여러분, 저 좀 도와주세욧~. 파파파…팔월에 저 만나면 모른 척하지 말아주세요.
공포 총동원령, 옴니버스 호러의 밤이 귀신, 저 원혼, 그 악령을 한꺼번에 만나는 옴니버스 호러와의 찌릿한 만남.
<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감독 정종훈, 김은경, 권일순, 김정민 출연 박은혜, 임호, 김서형 등
흐아아아~. 무섭지, 난 공포라고 해. 형체도 없고 해서 잘 나타나지 않는데 내가 직접 등장한 건 이번에 소개할 얘기가 4가지라서 그래. 우쒸, 싸가지가 아니라 네가지라고. 다 주인공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른데 딱 하나 공통점은 내가 나온다는 거거든. 우선 <2월29일>이라는 얘기가 있어. 고속도로 톨게이트 매표원인 지연이라는 여자가 있는데, 깊은 밤이면 피 묻은 표를 내고 가는 검은 자동차 때문에 무서워하고 있어. 그리고 4년마다 찾아오는 2월29일이면 톨게이트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말도 들어. 근데 마침 2월29일이 다가오고 동료 매표원이 죽은 거야. 이제부터 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거지, 히힛. <D-day>란 얘기는 유진, 은수, 보람, 다영이라는 재수생들이 주인공이야. 하여간 얘들은 대입 기숙학원 같은 방에 사는데, 깜찍하고 섹시한 애들의 속옷파티는 너무 기대하지 마. 알고 보니 몇 년 전 이 학원에선 끔찍한 화재사건이 일어났던 거야. 그리고 서서히 이 네명 사이에 무시무시한 기류가 감돌기 시작하고 누군가 죽어나가기 시작하지. 결국 내가 주연이란 얘기지. <네번째 층>이란 얘기는 짐작하는 대로야. 민주라는 미혼모가 딸 아이와 오피스텔 5층의 한 방으로 이사를 와. 이사 직후부터 딸은 공포를 느끼며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 아니겠어. 알고 보니 오래전 4층에서 비극이 있었대. 그 오피스텔에는 4층이 없으니까 5층이 4층인 셈이지. 마지막 이야기 <죽음의 숲>은 한 커플이 사고로 외진 숲에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일이야. 이들은 여기서 이미 저승에 가 있는 친구를 만나는데 이곳은 원혼이 서린 숲이야. 결국, 네편 모두 내가 중심인 거지. 아참, 오랜만에 나선 김에 한마디만 할게. 제작자 양반, 내 개런티는 언제 챙겨줄라우.
호러나잇은 오래 지속된다
현재 제작 중인 한국 공포영화는 한 편 더 있다. 에로영화에 관한 한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만든 봉만대 감독의 <신데렐라>가 그것이다. 도지원과 신세경이 주인공 모녀 역으로 캐스팅된 이 영화는 최근 촬영에 돌입했으나 ‘성형수술과 빗나간 모성애’라는 두개의 키워드 외에 자세한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봉만대 감독 특유의 감각이 호러 장르에서 어떻게 드러날지가 관심거리다. 외화 중에서는 우선, 전통깊은 공포영화의 리메이크작 <오멘>이 눈에 띈다. 6월6일 전세계 개봉이라는 ‘악마적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으는 이 영화는 1976년 전세계를 겁에 질리게 했던 원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다. 악마의 아들과 기분 나쁜 조우를 고대하는 이들이라면 6월6일 6시 표를 예매할지어다. 최근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사일런트 힐>은 같은 제목의 게임에 빠졌던 팬들이라면 목빠지게 기다릴 영화. ‘사일런트 힐’이라는 괴이한 공간을 배경으로, 신비로우면서도 무시무시한 마을 사람들과 맞서야 하는 주인공들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맨손으로 영화를 보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조이패드를 준비해도 좋을 것이다. 예견되지만 막을 수 없는 비참한 죽음을 그려낸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최신작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으면서 오히려 궁금증을 더 불러일으키고 있는 <호스텔>, 웨스 크레이븐(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좀비영화 <언덕이 보고 있다>>(The Hills Have Eyes) 등도 호러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영화들. 시도 때도 없이 ‘드르륵’ 거리는 <주온>의 공포를 짜릿한 기억으로 간직한 이들이라면 시미즈 다카시의 신작 <환생>에 베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