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보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땀이 차고 데오도란트를 살 생각이 드는가. 긴 바지와 운동화를 밀어놓고 반바지와 슬리퍼를 꺼내놓았는가. 이제 호러영화의 계절이 온 것이다. 올해 극장을 비명으로 그득 채울 한국 호러영화는 모두 8편. 예년에 비해 강화된 라인업을 자랑하는 이들 영화 중 7편을 영화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소개한다.
새롭게 부활한 한국 전통 원혼들의 밤옛부터 내려오는 우리 귀신 이야기가 현대를 배경으로 새 옷을 입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은 무서운 것이여’라고 선언하는 업그레이드 귀신 설화.
<귀신이야기>
감독 임진평 출연 이영아
아아, 마이크 시험 중, 아아…, 안녕하심까. 독각리 이장임다. 요 며칠 마을에 요상한 사건이 자꾸만 생겨서 걱정이 많으셨슴다. 대학생 넘들이 쌍쌍으로 엠튄가 뭔가를 한답시고 와서 동네를 들쑤시고 다녔던 것 같슴다. 그럼,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리겠슴다. 우리 마을에 왔던 우철이, 미루, 수웅이, 설아, 그리고 그놈 이름이 뭐야? 아, 구태까지 요렇게 다섯은 어떤 대학교 사진동아리 회원이람다. 얘들은 그냥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데, 하필이면 여기로 와서 별별 귀신을 다 만났담다. 태어나자마자 땅속에 묻힌 아기 귀신, 전쟁터에 나갔다가 억울하게 죽은 귀신, 아픈 상처를 안고 자살한 귀신, 아이를 버린 죄책감으로 몸을 던진 귀신,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은 물귀신 등등을요. 그놈들이 왜 그렇게 버라이어티한 귀신들을 한꺼번에 만났는지는, 거 뭐냐, 스파이더, 아니 스포일러라는 것 땜시 말할 순 없지만서도, 하여간 다 그럴 만한 사연들이 있었는가봅디다. 사실, 귀신이라는 게 만날 때는 무시무시한 것이 꼭 잡아먹힐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네들도 다 기구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거 아니겠슴까. 특히 이 땅에서 나 갖고 고추장 먹고 된장 바르고 했던 귀신이라면 남을 함부로 해치지 않죠. 근디, 귀신이란 것이 꼭 으슥한 시골에만 사는 존잽디까? 그 대학생들이 사는 주변에도 널리고 널린 게 귀신이라고 함다. 그러니까 우리는 귀신과 늘 공존하고 있다는 말임다. 이게 웬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그럴 때는 그냥 오도독 하는 소리만 남다. 하여간 무서우면서도 슬프고 또 친근한 우리 전통의 귀신이 이 대명천지에 나타난다면 주민 여러분은 어쩌시겠슴까. 네에? 이 21세기에 귀신이 어딨냐고요? 흐흐흐, 마을 주민 여러분, 내가 이장으로 보이남? 아니 들리남?
<아랑>
감독 안상훈 출연 송윤아, 이동욱
(딸깍) 강력반 형사 소영의 사건파일, 제44일째. 에잇, 녹음 버튼 대신 재생 버튼을 눌렀잖아. 다시…. (딸까닥) 오늘의 사건파일. 네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세건의 연쇄살인사건을 이놈이 저지른 줄 알았다. 근데 이놈마저 죽었다. 동욱이라는 이 의사의 전력은 화려했다. 대체 여자 몇 명이나 울린 거야, 이 새끼. 하여간, 이놈도 먼저 죽은 고등학교 동창 세명과 함께 황천길로 간 거다. 동창이라는 점 말고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죽은 놈들의 컴퓨터에는 민정이라는 소녀의 홈페이지가 켜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수사 때문에 한동안 싸이질을 못했군…. 에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딸깍, 휘리릭, 딸깍) 민정은 10년 전 실종됐다. 그리고 이놈들과 민정은 야릇한 관계였다. 그래도 민정이를 의심하기에는 좀… 무서운 구석이 있다. 동료 형사 현기와 민정이 살았다는 바닷가 마을을 찾았을 때 그 일을 겪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때 눈치채는 건데. 내가 무슨 스컬리 요원이라고 소녀 귀신이 나온다는 폐염전에 갔던 걸까. 그 으시시한 곳을 다녀온 뒤로 나는 잠을 못 잔다. 매일 밤 꿈속에 한 소녀귀신이 나와서 뭔가를 얘기하기 때문이다. 휴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하여간 그 귀신과 살인사건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기나 한 걸까. 문득, 아랑 설화가 떠오른다. 조선시대 밀양 부사에겐 아랑이라는 어여쁜 딸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랑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그 이후로 새로 부임하는 밀양 부사는 모두 부임 첫날 밤 눈을 부릅뜬 채 죽었다. 혹시 이 사건도 아랑 설화와 관련있는 건 아닐까? 이제 수사는 마무리 단계다. 7월 초면 아랑 설화와 연쇄살인의 관계가 드러날 거다. 범인이 귀신이라 해도 우리는 잡는다. 대한민국 형사가 못 잡는 게 어딨니.
현대적 삶이 불러오는 공포의 밤당신이 사는 아파트,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 쉴새없이 만지작거리는 휴대폰, 끊임없이 클릭하는 인터넷, 현대의 일상을 이루는 이 모든 것들이 공포로 돌변한다면?
<아파트>
감독 안병기 출연 고소영, 강성진
처음에는 정전인 줄만 알았다니까요. 맞은편 아파트의 불이 일제히 꺼지는 걸 처음 봤을 땐 말이죠. 그런데…, 그런데…, 매일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것도 매일 밤 9시 하고도 56분예요. 그것만으로도 무섭지 않나요? 아차, 저는 세진이라고 해요. 나름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죠. 근데 어떻게 매일 그 시간에 건너편 아파트만 보고 있냐고요? 한국 사회에서 30대 여자가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스포츠뉴스나 미니시리즈 따위에 한눈 팔 새가 없다구요. 하여간 제 말 좀 계속 들어봐요. 불이 꺼지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그때마다 아파트 주민 중 누군가가 시체로 실려나간단 말이죠. 꺄악! 지금 또 불이 꺼졌어요. 정확해요, 밤 9시56분. 정말 무서워요. 사람들이 참 이상한 게, 제가 이런 연관성을 일러줘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요. 동네 아줌마들은 아파트 시세만 걱정하면서 쉬쉬하는 분위기예요. 제가 아파트의 이상한 기운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저를 의심하기까지 해요. 이젠 모든 게 무서워요. 엘리베이터도 무섭고, 그 안의 거울도 무섭고, 어두컴컴한 비상계단이나 복도도, 사람들도 무서워요. 이제 이곳이 사각형의 감옥처럼 느껴져요. 이 콘크리트 덩어리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요? 혹시 이 딱딱한 벽 안에 무언가 무시무시한 게 스며들어 있는 건 아닐까요? 하여간 이 아파트에 얽힌 비밀은 6월이면 알아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저 세진이 역을 고소영 언니가 맡아줬다는 건 정말 영광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폰>이나 <분신사바>처럼 오로지 공포영화만 만들고 계시는 안병기 감독님의 호러 터치도 기대가 되고요. 강풀님의 인터넷 만화를 좀 더 호러영화에 가깝게 바꾸셨다는 얘기, 저도 들었어요. 그럼 저희 아파트, 판교 모델하우스로 생각하시고 많이들 놀러오세요.
<착신아리 파이널>
감독 아소 마나부 출연 호리기타 마키, 구로키 메이사, 장근석
‘♩♪♬♪♩….’ 제 휴대폰이 울고 있스무니다, 무섭스무니다. 한국 관객 여러분, 일단 저부터 소개하겠스무니다. 이제부터 능숙한 한국어로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에미리라고 합니다.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여학생이죠. 예쁘냐고요? 하이, 제 생각에는. 방금 폰 번호가 뭐냐고 물으셨어요? 혹시 원조교제를 원하시는 건가요? 저는 그런 취향이 아니고요, 또 인터넷을 알게 된 진우라는 한국인 남자친구도 있답니다. 으악, 휴대폰이 또 우는군요. (부들부들) 그럼, 지금 제가 처한 공포스러운 상황에 관해서 말할게요. 저희 학교는 이번에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오게 됐죠. 사건은 한국으로 오는 배 안에서 시작됐습니다. 아즈사라는 아이가 동영상 메일을 받은 겁니다. 그 메일에는 ‘목 매단 아즈사’란 제목이 있고, 누군가 목을 매 죽은 모습이 담겨 있었어요. 그런데 아즈사가 부산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동영상에서처럼 죽은 거예욧. 그 뒤로 이상한 메시지가 우리 휴대폰으로 날아들기 시작했어요. 이 메시지를 받는다고 다 죽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살아날 수 있어요. 근데, 한번 전달된 메시지는 다시 전송할 수 없어요. 그걸 받으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거죠. (덜덜덜)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정말이지, 지금 같아서는 휴대폰이니 인터넷이니 만든 사람을 일본도로 처단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하여간 6월이면 저간의 모든 사정을 알게 된다니 그때까진 휴대폰 안 받을래요. 이 영화는 한국하고 일본에서 동시에 개봉한답니다. 한국의 CJ엔터테인먼트와 일본의 가도카와 픽처스가 함께 만든 영화라서요. 그리고 극장 오셔선 휴대폰 꼭 꺼주세요. 괜히 켜놓고서 영화 보시다간…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