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유성영화 초기 사운드의 대담한 실험 <우리에게
자유를>
A Nous la Libert 1931년, 흑백, 95분 감독 르네 클레르 출연 앙리 마샹, 레이몽 코르디
1930년대 초부터 르네 클레르가 일했던 토비스 클랑필름의 스튜디오는 교외의 공업지대 근처에 있었다. 잡초와 들꽃이 무성한 가운데 공장의 굴뚝이 솟아 있는 그런 현실의 이미지에서 클레르는 자연과 산업의 묘한 대조를 보았고 그것에서 스토리를 하나 착상해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산업사회에 대한 풍자코미디 <우리에게 자유를>이다.
영화는 감옥에 갇혀 있다가 탈옥한 두 친구의 이야기를 경쾌한 목소리로 전해준다. 루이는 축음기를 제조하는 회사의 사장이 돼 있고 다른 친구인 에밀은 거리를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루이의 공장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재회하게 두 친구. 여기서 에밀은 공장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여성 잔의 사랑을 얻으려 애를 끓이고 루이는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갱들의 협박으로 안절부절못한다.
<우리에게 자유를>은 가볍게 질주하는 코미디로서도 아주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무엇보다도 산업화한 현대사회에 대한 은근한 조소로 유명한 영화이다. 예컨대 공장이 마치 감옥처럼, 그리고 공장의 경비원들이 제복을 입은 파시스트처럼 묘사되는 것 등을 보면 이 영화가 선지자적인 통찰력을 갖고 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이쯤 되면 우리는 자연히 찰리 채플린의 문명비판코미디 <모던 타임즈>(1936)를 떠올리게 될 텐데, 사실 채플린은 <우리에게 자유를>을 보고 아주 좋아했고 여기서 상당 부분을 차용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자유를>에서 또 하나 꼭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사운드의 창의적인 이용이다. 예컨대 꽃이 방랑자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든가 오페레타적 형식을 차용하는 장면들은 독특한 재미도 재미려니와 유성영화 초기시대에 사운드를 영화적인 요소로 적극 끌어들이려 했던 시도도 볼 수 있다. 본래 클레르는 영화에 사운드가 도입되는 것에 적극 반대했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었다. 하지만 <파리의 지붕 밑>(1930)에서부터 사운드를 이용하면서 그것을 단지 기록의 매체가 아니라 표현의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자신의 세 번째 유성영화 <우리에게 자유를>에서 클레르는 가장 대담한 사운드 실험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제2장 슬랩스틱코미디와 모더니즘의 만남 <윌로씨의
휴가>
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 1953년, 흑백, 90분 감독 자크 타티 출연 자크 타티, 나탈리 파스코
슬랩스틱코미디의 대중적인 호소력과 모더니즘적 실험을 융합했던 뛰어난 영화감독이자 코미디배우였던 자크 타티의 영화세계에는 흔히 ‘민주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따라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윌로씨의 휴가>의 명목상의 주인공은 타티 자신이 연기하는 윌로씨이지만 사실 그는 많은 인물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타티의 ‘민주주의’는 카메라 배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카메라는 주로 롱숏의 시선으로 포착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담으려 하고 무엇을 볼 것인가는 관객이 직접 선택하도록 배려한다.
관객에게 무언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는 원칙은 이야기하는 방식에도 적용된다. 여기엔 플롯이라든가 내레이터라든가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한 사건으로부터 다른 사건으로 쫓아가도록 재촉받지 않는다. 영화는 윌로씨가 브리타니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다시 돌아가기까지 자신도 모르게 주위에 크고 작은 소동을 몰고다니는 나날들을 그린다. 여기엔 인과관계의 고리를 따르는 스토리 구조란 없고 단지 차차 따분함과 권태를 느껴가는 휴양객의 심리에 맞춰 테니스 코트로, 피크닉으로 장례식으로 이동했다가 호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전체적으로 휴가를 닮으며 스스로 그것의 ‘구조’를 정확히 반복한다.
<윌로씨의 휴가>는 타티가 소리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알려주는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에 대사는 거의 없지만 후경에서 들리는 대사들, 프레임 밖의 소리들, 온갖 종류의 효과음 등 소리는 가득하다. 타티는 영화가 ‘듣는’ 매체이기도 함을 보여준 또 하나의 훌륭한 영화스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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