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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잡는 여인들의 맞춤 병기 [2]
이종도 2006-05-03

2. 총, 칼-화끈한 그녀들의 무기

<달콤, 살벌한 연인>의 이미나

총기나 칼을 구하기 쉽다고 해서 언니들을 함부로 할 수 있다는 망상을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다. <킬 빌>을 보면 완력이나 기술에서 남자가 여자를 압도한다는 건 환상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자기보다 연약한 여자를 강간할 수 있다고 믿는 우매한 마초들은 생명보험에 가입할 것을 권한다. 밧줄로 묶은 뒤 자기 마음껏 남의 육체를 학대하는 취향을 가졌다면 더욱 그렇다. 예방 차원으로 우선 <몬스터>를 보기 바란다. 에이린은 신체의 다부짐, 빠른 조건반사, 가차 없는 확인사살 등 모든 부분에서 멍청한 마초들을 압도한다. 요즘 언니들은 특히, 자기보다 신분이 낮거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고 믿는 인격장애자들에게 매우 잔인하고 살벌하다. 에이린은 강간범이 품은 밧줄의 환상을 총알로 분쇄해버린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델마 대신 총을 겨눈 루이스도 에이린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강간범은 델마가 분명히 거절의 의사 표시를 했는데도 폭력을 행사하며 짐승처럼 덤벼든다. 루이스는 사과는커녕 욕설만 바가지로 퍼붓는 강간범에게 총알을 선물로 준다. 입에 장전된 욕설이 아무리 마초스럽고 힘이 넘쳐도 언니가 발사한 탄환보다 빠를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알아서 사과해야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다.

이런 계열의 언니들 가운데 대표적 캐릭터는 아벨 페라라 감독의 타나가 있다. <복수의 립스틱>의 청각장애 재봉사 타나는 마초 혼내는 스타일로는 에이린의 왕선배이며, 마초들 정리하는 스타일로는 <달콤, 살벌한 연인>의 이미나 왕선배쯤 될 텐데, 연속으로 강간당하자 먼저 다리미로 강간범을 내리친 뒤 큰 칼로 신체 부위를 정리해 냉장고에 저장한다. 가재도구를 최대한 활용하여 마초를 응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언니들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짓밟아놓으면, 언니들은 무차별-무작위적으로 응징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 정도를 빼면 이런 스타일의 언니들은 연쇄살인마가 되어 남성 연쇄살인범들을 찜쪄 먹는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이미나, <킬 빌>의 더 브라이드, <몬스터>의 에이린, <복수의 립스틱>의 타나,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 <오로라공주>의 정순정이 이런 화끈한 언니들의 계보를 이룬다.

이 계열 언니들의 특징은 처음엔 아주 다소곳하고 예의바르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있거나 과격하지는 않았는데 지저분한 마초들을 상대하다 보니 성격이 거칠어진 것이다. 게다가 한번 마음먹으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대쪽같고 후회도 없으며 죄의식도 진작에 팔아먹었다는 게 이쪽 언니들의 공통점이다.

<복수의 립스틱>의 타나

<몬스터>의 에이린

<달콤, 살벌한 연인>의 이미나는 영화를 통해 진짜 성깔을 확실하게 드러내진 않지만 심부름센터 직원의 말을 들어보거나, 우발적인 정당방위의 현장을 잠깐 훔쳐본 것에 따르면, 시체를 보관하기 위해 대형 김치냉장고를 사거나, 사체를 깊은 산에 유기하는 여유있는 대처방안과 사체유기 솜씨가 유영철 뺨친다. 아예 사체도 발견될 수 없으니 무덤도 얻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미나 같은 스타일의 언니를 만나 함부로 굴 생각이라면 미리 무덤 자리도 봐두고 머리카락이라도 잘라두어 무덤에 넣어두기 바란다. 자칫하면 아예 존재의 흔적조차도 사라질 수 있으니.

오늘의 교훈: 마초 행세 하기 전에 생명보험에 꼭 가입하자.

관련 영화 보기 <달콤, 살벌한 연인> <킬 빌> <몬스터> <델마와 루이스> <복수의 립스틱>

3. 인내, 용기- 지성적인 그녀들의 무기

<노스 컨츄리>의 조시 에임스

앞서 소개한 무서운 언니들은 사실 소수파다. 다수는 지적이며 차분하고 논리적이다. 다만 반응이 늦어 보일 뿐이다. 그건 언니들이 화를 늦게 내는 타입이어서가 아니라, 법과 제도와 권력이 아직 마초들에게 호의적이기 때문이다.

<노스 컨츄리>의 조시 에임스가 대표적이다. 때리는 남편을 피해 집을 나온 에임스는 두 아이를 건사하기 위해 미네소타주 북부의 철광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마초들의 소굴 같은 곳인데 이 마초부대들은 언니 광원들의 도시락 통에 모조남자성기 갖다 놓기, 언니들 탈의실 벽부터 일터 곳곳에 음란한 낙서하기, 언니들이 들어간 이동변소 뒤흔들어 똥물 튀기기, 멱살잡고 강간 흉내내기 등을 천연덕스럽게 즐긴다. 오래된 얘기도 아니고 불과 10년 저쪽의 이야기이며 틈만 나면 인권 운운하는 미국에서 벌어진 실화다. 에임스는 차분하게 철광회사와 마초 노동자들을 법의 심판대 앞에 불러세운다. 성희롱을 일삼던 마초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고, 회사는 에임스에게 손해배상했다.

물론 언니들이 모자란 마초들보다 더 마음씨가 넓고 관용과 인내를 발휘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도그빌>의 그레이스를 보면 알수 있다. 위선 떠는 록키산맥의 도그빌 마을 사람들이 행한 온갖 악덕을 그레이스는 묵묵히 견뎌낸다. 그레이스는 폭풍 같은 심판의 순간을 마지막까지 아껴둔다. 이쪽 계열의 언니들은 가계부와 일기 적는 심정으로 차분하게 마초들의 악덕을 기억해두었다가 응징의 순간에 폭발한다. 사적인 복수보다는 공적인 차원에서의 복수를 더 좋아한다.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나가지 않으니 마초들은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런 언니들 덕택에 이제 아무도 함부로 직장동료의 어깨를 만지거나 뒤에서 와락 껴안고 “음식점 주인인 줄 알았다”는 헛소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도그빌>의 그레이스

<매치 포인트>의 노라

안타까운 건 그런 분노를 폭발시킬 순간을 얻지 못한 언니들이 많은 것이다. <매치포인트>의 노라는 성공에 목마른 이기적인 유부남 크리스의 약속 이행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정말 목이 빠지고 만다. 경찰이 크리스의 악덕을 적어놓은 노라의 일기장만 더 유심히 들여다봤던들, 노라는 덜 억울했을 텐데. 그러나 마초들의 죄악을 빠짐없이 적는 노라의 일기장, 또 일기장 같은 기억이야말로 마초들에겐 가장 무서운 심판의 책인 것이다.

오늘의 교훈: 언니들은 당신의 행악을 머리와 일기장 속에 적어둔다. 그리고 그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관련 영화 보기 <노스 컨츄리> <도그빌> <매치포인트>

마초들의 생명 연장 캠페인 10계명

1. 조금이라도 꺼림칙할 때는 음식에 주의를 기울여라. 독이 있을 수 있다. 2. 함부로 하고 싶어도 언니의 핸드백이 불룩할 때는 조심하라. 칼이 있을 수 있다. 3. 유부남인 주제에 껄떡대면 죄가 더 크니 알아서 행동하라. 4. 사귈 마음이 없다고 해서 함부로 대했다가 바로 무덤으로 직행할 수 있다. 5. 작업 들어갔는데 언니들이 너무 순순히 나오면 의심하라. 6. 작업 들어갔는데 언니들이 깐깐하게 나오면 선한 웃음을 짓고 물러나라. 7. 같이 자고 싶을수록 예의바르게 굴어라. 8. 안 자고 싶어도 예의바르게 굴어라. 9. 자고 난 다음에 지갑에서 돈 꺼내는 따위의 짓은 절대 하지 말라. 남 자존심 긁다가 인생 확 긁힌다. 10. 임신시켰으면 끝까지 책임져라. 언니의 모성애를 건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