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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잡는 여인들의 맞춤 병기 [1]
이종도 2006-05-03

‘언니’들이 날로 살벌해지고 있다. 달콤한 줄만 알았던 언니들이 살벌해진다는 건 그저 세상이 변했다는 정도의 풍문이 아니다. 마초들의 전성시대가 끝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고 살벌하게 끝나고 있다. 단지 마초들이 반성문 정도로 끝낼 문제가 아니라, 아예 전향서를 써야 할 심각한 상황이 닥친 것이다. 평소 언니들을 무시해온 인류의 오랜 전통에 기대 편하게 살았다면 이 기회에 전향해야 한다. 언니들, 이제는 당하지 않고 복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초들이여, 더러운 성질 버리고 자수하여 광명 찾자. 얻을 건 생명이요, 잃을 건 마초의 더러운 전통밖에 없다. (스포일러 지뢰밭이 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선 이 지뢰밭을 건너야 한다. 목숨보다 중요한 게 어디 또 있겠느니.)

1. 쥐약, 독약-차분한 그녀들의 비상무기

<성냥공장 소녀>의 아리스

마초들이 저지르는 잘못이 어디 한 둘로 그칠까마는, 특히 함부로 껄떡대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잘못하면 ‘골’로 간다. 마초들의 생각은 늘 언제나 똑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번 하는 것’이다. 자기가 요구하면 언니들이 들어줄 거라는 착각이 죽음으로 이를 수 있다. 정말 오해하지 말고 듣기 바란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이런 농담 듣고 웃어넘기다가 쥐약 목으로 넘기고 죽은 사람 여럿 봤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특히 음식점 계통에 종사하는 언니들과 집안 부엌살림을 도맡아 하는 언니들 앞에선 예의를 차릴 것을 권고한다. 언니들에겐 부엌과 식당에서 쥐를 잡아 죽여온 오랜 전통과 관록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쥐처럼 아무 데나 들쑤시고 다니면서 ‘한번 달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다니는 마초라면 유념해 듣도록.

최근 개봉해 유부남 껄떡쇠들을 경악케 한 <망종>의 조선족 순희씨 사례를 먼저 들려줘야 할 것 같다. 최순희씨는 ‘조선포채’(김치)를 삼륜자전거에 싣고 팔러 다닌다. 유부남 김씨는 ‘같은 조선족인데 말 못할 게 뭐 있냐’며 치근덕댄다. 결혼을 앞둔 공안원 왕씨도 시간 날 때마다 찾아온다. 김씨는 아내에게 순희씨를 창녀라고 해서 순희씨를 경찰서로 넘기고, 경찰서의 왕씨는 동료들이 술 마시러 간 사이 순희씨를 겁탈한다. 순희씨는 이들 모두에게 쥐약으로 잘 버무린 조선포채를 사례로 돌려준다. 껄떡남들 어떻게 됐느냐고? 쥐약 먹고 헐떡거리며 더 이상 껄떡거리지 못하게 됐다. 정의의 조선김치!

순희씨는 그런 점에서 <성냥공장 소녀>의 핀란드 성냥공장 소녀 아이리스와 비슷하다. 아이리스는 성냥공장에 다니며 가족을 먹여 살리는 소녀가장이다. 의붓아버지와 엄마는 아이리스가 퇴근해 식사 준비를 할 때까지 TV만 본다. 아이리스가 자기 월급으로 옷을 사자 뺨을 때리고 돈으로 바꿔오라고 한다. 열받은 아이리스, 새로 산 옷을 입고 술집에 갔다가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자고 나서 돈푼이나 쥐어주지를 않나, 싸가지없게 아이리스 밥 먹고 있는데 꺼지라고 하지를 않나, 임신했다는데 ‘애새끼 지우라’며 수표를 보내기까지 한다. 아이리스는 쥐약을 물에 타 희석시킨 다음 술을 섞어 골고루 부모와 남자에게 대접한다. 마초 잡는 죽음의 칵테일 솜씨다.

<글루미 썬데이>의 일로나

<망종>의 최순희

<글루미 선데이>의 연로한 일로나 할머니는 단연 이 방면의 전문가라 하겠다. 헝가리의 소문난 맛집을 운영하고 계시니 독약 칵테일이라면 더 일가견이 있으실 터. 2차대전 당시 수용소로 끌려가는 애인을 구해달라고 나치 장교 친구인 한스에게 갔다가 더러운 꼴만 당하셨는데, 한스의 어리석음을 가르치시기 위해 55년이나 기다리셨다가 죽음의 스테이크를 대접한다. 저승가는 길 외롭지 않게 ‘글루미 선데이’ 생음악도 준비하는 ‘쎈쑤’!. 일로나 할머니의 방법은 순희씨나 아이리스에 비해서 칵테일 수준이 더 고급스럽고 준비하는 데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 치밀하게 준비하여 마초남들에게 깜짝선물을 안긴다는 것이다. 부작용도 물론 따르는데, 술집에서 아이리스 옆자리에 한번 앉았다가 괜히 아이리스가 건네주는 술 잔 한번 받아먹고 그냥 무덤으로 간 친구도 있다. 그러니 괜히 모르는 여자에게 다가가서 껄떡대지 말기 바란다.

오늘의 교훈: 내게로 온 잔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말자.

관련 영화 보기 <망종> <성냥공장 소녀> <글루미 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