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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조 경감의 사건 보고서 [2]
김도훈 2006-05-02

<엔트랩먼트>와 <종횡사해>

연도/ 1999년과 1991년

피해자/ 모모 박물관들

피해물/ 중국 가면, 명화 <할렘의 여시종>

용의자/ 미술품 전문 도둑 로버트 맥두겔과 젊고 아름다운 신참도둑 버지니아 베이커, 역시 명화 전문 도둑 3인조(장국영, 주윤발, 종초홍)

사건경과/ 두 케이스 모두 비슷하다. 맥두겔-베이커 콤비와 중국인 3인조의 감쪽같은 도둑질은 모두 애크러바틱한 몸놀림 덕분이다. 섹시한 미녀 강도 버지니아 베이커는 중국 가면을 훔치기 위해 박물관의 보호 레이저 시스템과 똑같은 형태의 그물을 설치했고, 그것을 통과하는 피나는 연습을 통해 실망처럼 뻗어 있는 레이저 철조망을 귀신처럼 빠져나갔다. 중국인 3인조가 <할렘의 여시종>을 훔친 방법도 동일하다. 이들 역시 그림이 걸린 요새로 잠입해 레이저 경보 시스템이 허공에 그려놓은 레이저를 요리조리 넘어가버렸다. 명품 도둑질의 세계도 이제 늘씬한 몸짱들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기가 막히게 증명한 케이스. 레이저 시스템만 믿고 나 같은 경험있는 경관에게 미리 경비를 요청하지 않은 박물관들의 나태함이 이런 사태를 불러온 셈이다. 범죄는 과학이 아니다. 범죄는 육감이다.

결론/ 대체 이들이 인간인가. 인간의 몸으로 실망처럼 뻗어있는 레이저 철조망을 넘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식초만 먹으면서 동춘 서커스단에서 일해왔나 보다. 위대한 프랑스인들은 그깟 그림 따위 훔치려고 이런 자기학대를 일삼지는 않는다.

<웨어 더 머니 이즈>

연도/ 2000년

피해자/ 평범한 미국 마을의 평범한 은행

피해물/ 70대 노인과 30대 여자 커플이 평생 놀고 먹을 만한 돈

용의자/ 전직 강도인 노인 헨리와 섹시한 간호사

사건경과/ 어딘지 모르게 조금 측은한 케이스다. 기발한 두뇌회전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전설적인 은행강도 헨리가 시골마을 양로원 간호사 캐럴을 꾀어 현금 수송 차량을 강탈했다. 아니, 다른 경찰의 말에 따르면 돈 없이 양로원 간호사로 일하는 게 따분해진 캐럴이 은퇴한 강도 헨리를 강도짓을 벌인 거라고도 한다. 뭐가 어찌 되었건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강도 짓에 성공하고 말았다는 거다. 게다가 더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평생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을 헨리가 어떻게 탈출해서 은행을 털었느냐 하는 문제다. 간단하다. 여전히 딸 같은 간호사를 꾈 수 있을 만한 ‘미노년’ 헨리는 근육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뇌졸중 환자처럼 위장해서 감독에서 양로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감옥에서 나오기 위한 그의 육체적 인내는 정말 존경할 만하다. 그는 지루해진 간호사 캐럴이 바늘을 찔러도, 물에 빠뜨려도, 끝까지 뇌졸중 식물인간처럼 굴었다고 한다. 결국 헨리를 굴복시킨 것은 캐럴의 섹시한 마력인 것으로 보인다.

결론/ 캐럴의 현지 경찰한테서 몽타주를 받아 보았는데, 내가 은행강도라도 이런 여자와 살기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서 은행강도질을 다시 시작했을 게다. 물론 우리 위대한 프랑스의 여인들이 더 아름답긴 하지만, 간혹 꽤 괜찮은 편인 미국 여자들도 있다.

<자카르타>

연도/ 2000년

피해자/ 오광투자금융

피해물/ 300만 달러

용의자/ A팀, 아니 B팀, 아니 C팀인가. 아니 세팀 모두 범인인가.

사건경과/ 강도 3팀이 손을 잡고 오광투자금융의 금고를 턴 사건이다. 나 클루조 경감에게 아시아는 처음이었기에 꽤나 즐거운 마음으로 한국 경찰과 공조작전에 나섰지만, 프랑스어 통역가가 준비되지 않아서 호텔에서 잠만 잤다. 뒤늦게 한국 경찰에게 들은 바로는 쓸 만한 프랑스어 통역가가 있었더라도 사건경과를 도저히 설명하지 못했을 거라 한다. 사건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사건 전개의 논리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놈들의 협동작전은 애초부터 아슬아슬했다. 해룡, 두산(이하 A팀)은 무기밀매상에게서 권총을 구입하고 경찰을 가장해 금고를 털기로 한다. 그리고 오광투자의 부사장이자 20억의 빚을 진 사장 아들 사현은 애인 은아를 구슬려(이하 B팀) 자기 회사 금고를 털기로 한다. 그리고 블루, 화이트, 레드라는 이름을 가진 도둑들(이하 C팀)은 금고 바닥을 파고 들어가서 돈을 강탈할 뒤 가스를 폭파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하수구를 뚫고 올라온 C팀 중 한명이 B팀에게 붙잡히고, 경찰로 분한 A팀은 C팀을 제거하고 B팀을 인질로 잡아 은행장에게 300만 달러를 요구했다. 아아, 복잡해서 넌더리가 난다. 한번 정리해보자. 알고 보니 강도 A팀은 강도 B팀과 협력으로 범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강도들이 신의를 지킬 리 있나. 강도 B팀은 또 강도 C팀과 결탁해서 A팀을 물먹인다. 그런데 알고 보니 B팀의 대장이 C팀과 한통속이었고, 우연히도 A팀의 멤버 한명은 B,C팀과 애초에 아는 사이었다는 결론. 이쯤되면 도대체 제정신이 있는 경관이 경과보고서를 쓴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위대한 프랑스의 지성을 소유한 나 클루조 경감이 이런 식의 범죄가 성공리에 끝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결론/ 한국 강도들은 천재 아니면 바보가 분명하고, 이딴 식의 경고보고서를 쓴 한국 경찰은 머저리가 틀림없다. 우리 위대한 프랑스 경찰이라면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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