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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스파이들의 신세한탄 [2]
김수경 2006-04-26

빚좋은 개살구: 화려하지만 실속없는 직종, 스파이

이던: 사실 스파이가 빛좋은 개살구야. 몇 천억원대 사기를 벌이는 악당을 쫓아다녀도 인센티브가 있길 하나. 위험수당이 있길 하나. “대원들이 체포되거나 살해당할 시엔 언제나처럼 정부는 자네의 모든 활동을 부인할 것”이라고 매번 협박이나 하지. 비정규직도 이렇게 천대받는 비정규직이 없어.

오스틴: 이던 팀은 메시지 보내고 5초 만에 불태우는 테이프만 재활용해도 노후는 걱정없을 텐데. 어허허허허허허.

존: 그렇게 힘들다면서 불가능한 두 번째 임무에서 오토바이는 왜 허공에서 터트리고 난리야. 하긴 처음엔 헬기도 폭파했지. 완전 오버액션맨이야.

이던: 다들 알다시피 그거 국방부 협찬이잖아. 처음 작전 나갈 때만 해도 흠집이라도 날까봐 조심스럽게 몰다가 내가 죽을 뻔한 적도 많아.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열받더라. 작전 끝나면 냉큼 뺏어가는 협찬사도 얄밉고 해서 오토바이는 일부러 터트렸어. 왜 떫어? (느닷없이) 그리고 제이슨 너는 그런 낭만적인 기질이 문제야. 스파이면 스파이답게 행동해. <본 슈프리머시> 작전에서 마리의 복수를 하러 갔으면 다 죽이고 돌아오지, 왜 네스키 딸을 찾아가서 사과하고 난리야.

제이슨: 난 옛날처럼 살기 싫어. 미안한 건 미안한 거야.

존: 그래도 제이슨은 죽인 사람이 별로 기억나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일지 몰라. 제인은 제이슨처럼 사과하다보면 할머니가 될지도 몰라.

오스틴: 왜?

존: 312명이나 죽였거든. 유족만 해도 수천명일 거야.

제인: (존을 흘겨보며) 저걸 남편이라고. 킬러는 사람 많이 죽이는 게 업무능력이야. 100명도 못 채운 주제에 큰 소리는. 프로야구선수 장훈이 말했잖아. 프로야구선수는 기록이 인격이라고. 킬러는 피살자 수가 곧 업적이야.

이던: 그나저나 요즘 일하기 너무 갑갑해. 아랍 애들 우려먹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5년째 내부의 적만 쫓아다니는 것도 식상하잖아. 일하기도 너무 힘들어. 내가 로마에 가서 IMF(Impossible Mission Force) 라이선스를 내밀었더니 IMF(국제통화기금)에 근무하는 줄 알아. 참나.

M: CIA는 완전 덤 앤 더머야. 뭐 하러 요원들 명단을 파일로 만들어서 매번 문제를 일으킬까? 이던도 제이슨도 그것 때문에 작전에 말려들었지? 뇌물 주면서 장부에 적다가 나중에 그것 때문에 걸리는 로비하는 놈들이랑 똑같아.

존: 무슨 연예인 X파일도 아닌데 툭하면 밖으로 유출이야. 보안이 너무 취약한 거 아냐? 백신프로그램 좀 자주 돌려.

오스틴: 너희는 그러니까 일이 안 들어오는 거야. 엽기가 대세잖아. 내가 정말 바보라서 영구 놀이하겠니? 다 일부러 어수룩하게 행동하는 거야. 언니들도 잘해주지, 악당들도 방심하지, 얼마나 좋아? 너희도 긴장 좀 풀어. 리∼일랙스∼.

제인: 오스틴, 너 닥터 이블이랑 친구라는 소문이 있더라.

제이슨: 아예 오스틴이 닥터 이블이라는 첩보도 있어. 그래서 작전이 끝날 때마다 안 잡히는 거 아닌가?

오스틴: 사실 이블이 입으로만 떠들지. 세계평화를 해쳤던 적 없잖아. 너희가 상대하는 다른 악당들보다 귀엽잖아.

M: 옹호하는 걸 보니 더 수상해. 미니미에게 도토리나 홈피 스킨이라도 받았니?

스파이들의 고통스러운 연애담: 잡히면 죽는다.

이던: 그래도 난 오스틴이 부러워. 툭하면 과거로 날아가서 스파이들이 대접받던 시절에 활동하잖아. 나는 직장상사랑 싸우다가, 물장수랑 싸우고, 이번에는 약혼녀가 납치돼서 카포티(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랑 싸워야 돼. 힘만 많이 들고 적들이 너무 찌질해.

제인: 이던은 클레어(에마뉘엘 베아르)는 기억도 못하겠군. 두 번째 불가능한 임무에서는 휴(탠디 뉴튼)랑 결혼할 것처럼 굴더니 그새 또 누구랑 약혼을 한 거야? 능력도 좋아.

이던: 그게 언제 적 이야기야.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러브레터>의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면서 눈(雪)에 밥 말아먹던 시절 이야기를 하고 그래.

제인: 더그 라이먼 국장이 <폭풍의 질주> 작전에 참여했던 당신 전처 클레어(니콜 키드먼)를 <본 앤 어웨이>팀에 기용했어. 이던, 밤길 조심해.

이던: 너나 잘하세요. <디파티드>(마틴 스코시즈의 <무간도> 리메이크작) 작전을 제작한 제니퍼 애니스톤이 뉴욕 마피아들 동원하면 어쩌려고 그래.

존: (긴장한 얼굴로 말 돌리며) 제이슨은 그래도 아직도 마리(프란카 포텐테)를 못 잊은 것 같은데?

제이슨: (노려보며) 내 앞에서 여자 얘기 하지마. (표정이 돌변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세 번째 작전에서는 누구 사귈지도 모르지만….

M: (수줍게) 사실은 나도 첫사랑이 있었어. 그 사람도 스파이였어. 잠시 007로도 활동했지.

이던: 로저 무어라면 올해 여든인데, 하긴 M도 일흔이 넘었으니까.

M: (포크를 이던의 손가락 사이에 꽂으며 살벌한 표정으로) 궁합도 안 본다는 네살 차이였어. 그리고 비운의 주인공이었지. 그는 미국쪽에 붙잡히는 바람에 30년 동안 알카트래즈 감옥에 수감돼. 10년 전 극적으로 탈출했어.

제인: 아아, 1996년 <더 록> 작전에 동원된 존 패트릭 메이슨(숀 코너리) 할아범?

M: 그래, 나의 영원한 사랑을 즈려밟으시던 남친이셔.

제인: 그래서 나중에 만났어?

M: (고개를 툭 떨어뜨리며) 이후에 문자도 없으셔.

오스틴: 그 사람 사정은 내가 잘 알아. 영국에 안 오는 이유가 두 가지래. 하나는 영국 해군에서 30년간 밀린 월급을 못 주겠다고 해서 빈정이 상했고, 나머지 하나는 음….

M: 그럴 줄 알았어. 제임스 본드, 이노무 자슥의 낭비벽 때문에 내 간절한 사랑이 또 가로막히다니. 그런데 나머지 이유는?

오스틴: 그게… 몰래 영국에 왔다가 M이 자길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종적을 감췄대. 어허허허허허허허.

M: (잠시 침묵) M16의 전 조직원을 동원해서라도 찾아내서 능지처참할 테다. 불끈.

(일동 폭소)

M: 자 어쨌든 밀린 방세 내려면 다들 올해는 열심히 뛰라고. 월세 떼먹고 도망가봐야 소용없어. 남극으로 도망가도 찾아가서 받아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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