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ten Powers: The Spy Who Shagged Me 1999년, 감독 제이 로치 출연 마이크 마이어스 자막 영어, 한국어 화면포맷 2.35: 1
<오스틴 파워>는 한마디로 말해 재미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유쾌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왜 <오스틴 파워>를 유쾌하게 생각하는지 나 자신도 이해를 못한다는 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영화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평소의 내 영화취향에 따르면 <오스틴 파워>는 나를 불쾌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시사회장에 가면서 내내 생각한 것이 ‘기분이나 상하지 않고 봤으면 좋겠군’이었으니까. 한술 더 떠 ‘민망한 표현에 너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말고 영화의 묘미를 잘 파악해줬으면 좋겠다’는 시사회 주최쪽의 걱정어린 소개말은 나를 더욱 불안한 상태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스틴 파워>는 나를 상당히 유쾌하게 만들었다. 물론 너무나도 색스러운 대사들이 화면 위로 난무할 때는 무안함에 헛기침을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뒤 <오스틴 파워 제로>도 유쾌하게 감상할 수 있었고, 얼마 전에는 조만간 출시될 예정인 <오스틴 파워>의 DVD를 일찌감치 손에 넣고 흐뭇해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내가 시각적인 영화에 약하다고는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닌 요소들도 많이 있는 이 영화에 한없이 관대해지는 것은 이 영화가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오스틴 파워>가 가진 이런 매력은 DVD에 잘 선별돼 수록되어 있는 다양한 서플먼트에까지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쾌한 부분은 관계자들이 총출연해 왁자지껄 영화이야기를 해대는 ‘Behind the Scenes’ 코너. 감독인 제이 로치는 물론, 영화제작의 일등공신인 주인공 마이크 마이어스와 그 유명한 제리 스프링어까지 몽땅 다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재미있는 것은 시종일관 가볍게만 보이던 영화의 이미지와는 달리 영화에 사용된 다양한 아이디어, 분석, 법칙, 대인관계, 음악적 요소, 미술적 요소들이 치밀한 계획하에 배치된 것임을 이들의 인터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꽤 긴 이 코너가 고맙게도 한글 자막처리가 되어 있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만족스럽다. 만약 자막이 없었다면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귀를 쫑긋 세워 해석하며 듣느라 유쾌한 기분이 다 날아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에 출시되는 DVD 중에 이렇게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친절한 한글 자막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DVD시장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터라 모든 DVD들이 이런 투자를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조만간 전체 서플먼트를 한글 자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된다. 또다른 매력적인 서플먼트로는 ‘Music Videos’ 코너를 꼽을 수 있다. 담겨 있는 세편의 뮤직비디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아마도 헤더 그레이엄의 오묘한 섹시함으로 인해 화면에서 눈을 떼기가 더 힘든 랜디 크레비츠의 <American Woman>일 것이다. 하지만 마돈나가 마이크 마이어스와 같이 찍은 <Beautiful Stranger>도, 멜라니 비가 절대적인 귀염둥이 미니미와 함께 등장하는 <Word Up>도 각각의 개성적인 색채로 무장을 하고 눈과 귀를 자극한다. 이 세편의 공들인 뮤직비디오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에서 보이는 60년대의 폭발적인 생동감과는 또다른 20세기만의 역동적인 영상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밖에도 이 <오스틴 파워> DVD는 무려 21개의 삭제장면과 4개의 극장용 예고편 그리고 카메오로 출연한 유명배우들의 프로필까지 담겨 있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상당한 포만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김소연/ 미디어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