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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우·최강희 주연의 <달콤, 살벌한 연인>
강병진 2006-03-29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가수 김명애의 <도로남>은 극과 극을 치닫는 연애의 속성을 촌철살인의 가사로 묘사했다. 연애는 그렇게 쉽게 젖어들고, 또 쉽게 메말라버린다. 그 마음을 진심으로 믿어 낙원과도 같은 판타지를 꿈꾸다가도, 그 마음이 거짓인 걸 알아차린 순간에는 애정의 리비도가 분노로 치환한다. 덕분에 연애에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이 필요하다. 그 마음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긴장, 또 거짓을 들키지 않으려는 긴장. 겉으론 ‘달콤’한 표정을 지어도, 속으론 ‘살벌’한 눈을 치켜떠야 하는 것이 바로 연애에 빠진 사람들의 딜레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예측 불가능한 연애만큼이나 결론을 가늠하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영화다. 서른이 넘도록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대우(박용우)는 ‘연애무용론’을 설파하며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려는 남자. 하지만 나이가 서른을 넘자 주위 커플들이 눈에 밟히고, 게다가 어느 날 침대를 옮기다 다친 허리 때문에 불현듯 찾아온 외로움은 그를 더욱 몸서리치게 만든다. 결국 ‘애인’을 찾아 나선 대우는 아랫집으로 이사 온 지적이고 독특한 분위기의 여인 미나(최강희)와 얼떨결에 데이트를 하게 되고, 두 사람은 열정적인 연애에 빠진다. 그러나 연애의 ‘진 맛’도 잠시. 취미는 독서에 미술을 공부한다던 미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화가 몬드리안도 모른다고 하자 대우는 그녀에게서 수상쩍은 기운을 느끼기 시작한다. 또 지적인 그녀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룸메이트와 알몸으로 그녀의 집에 들이닥친 옛 애인, 그리고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외출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온몸에 흙을 묻히고 오는 그녀의 모습 역시 의심스럽다. 게다가 그녀의 본명이 ‘이미나’가 아니라 ‘이미자’라니!! 과연 그녀의 정체는 달콤한 걸까, 살벌한 걸까?

달콤한 유머와 살벌한 미스터리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이 황당한 연애담에 ‘그래서 연애가 달콤하다는 거야, 살벌하다는 거야?’란 이분법적인 질문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살인사건이 녹화된 테이프를 찾기 위해 영화 비디오들을 섭렵한 살인자가 결국 영화감독이 되려고 한다는 중편 <너무 많이 본 사나이>로 2000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손재곤 감독은 전작처럼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도 여러 장르들을 혼재시켰다. 여타의 로맨틱코미디인 척 ‘애인 만들기 소동’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어서 미스터리 스릴러, 엽기 드라마를 더하고 거기에 안타까운 로맨스까지 담아낸다. 앨프리드 히치콕을 존경해 마지않는다는 손재곤 감독은 앞서 예상하려는 관객과 게임을 즐기려는 듯 여러 맥거핀까지 숨겨놓았다.

이 하이브리드 장르 영화를 더욱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데 박용우와 최강희 두 배우의 평범치 않은 분위기도 한몫한다. 박용우가 맡은 ‘황대우’는 로맨틱하지도 않고, 때로는 시니컬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남자로 <혈의 누>에서 날선 카리스마를 보여준 뒤, <작업의 정석>에선 괴팍하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한 스토커를 연기한 박용우의 모습들이 겹쳐 오르기 충분하다. 또 <단팥빵>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등의 드라마에서 독특한 말투와 귀엽고 엉뚱한 매력을 선보인 최강희 역시 양파껍질처럼 벗기면 벗길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여자 ‘이미나’에 더없이 걸맞아 보인다. 기묘한 매력의 배우들이 펼치는 이 기묘한 연애담이라니 역시 겉으론 ‘달콤’한 표정을 지어도, 속으론 ‘살벌’한 눈을 치켜뜨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달콤, 살벌한 이야기의 탄생 비화

손재곤 감독은 원래 ‘인류 구원’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한달 동안 연락을 끊고 서해 어느 한구석에 숨어서 집필에 매진하던 그는 이 영화가 도스트예프스키적인 작품이 될 것임을 알았고, 유일한 문제 거리는 타르코프스키를 인용하느냐 마느냐일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영화에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달 뒤, 서울로 올라와 간만에 메일함을 확인한 손재곤 감독은 애인의 이별통보를 받는다. 이별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려 했던 것일까? 그는 다시 서해로 내려가 인류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미루고 <달콤, 살벌한 연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백권의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어보시라. 그나 그녀가 보낸 문자메시지 한 줄을 이길 수 있나. 다시 한번 그 백권을 살펴보시라. 도대체 사랑을 다루지 않은 작품이 몇 권이나 되는지.” 아마도 그 순간 손재곤 감독은 ‘인류 구원’보다도 더 위대한 것이 ‘사랑’임을 깨달았나 보다.

달콤, 살벌한 포스터

‘그녀의 특별한 요리가 시작된다.’ 정녕 무엇을 요리하기에. 모르긴 몰라도 요리 재료는 냉장고에 갇힌 박용우 일 것 같다. 각각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와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을 패러디한 포스터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달콤, 살벌한 연인>은 2차 포스터에서 두 남녀가 달콤하기만 한 사이가 아님을 보여준다. 붉은 고무장갑을 낀 한 손으로는 요리 재료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에는 금방이라도 내려칠 듯 번쩍거리는 칼을 치켜든 최강희의 섬뜩한 모습과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냉장고에 갇혀버린 남자 박용우의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박용우는 포스터 촬영 내내 실제로 온몸을 묶은 채 3시간 넘게 좁은 냉장고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고. 결국 촬영 막바지에 가서는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 표정이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보였다는 후문이다.

달콤, 살벌한 대사들

“그 사람이 좋아했던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추억에 잠긴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야산에서 암매장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그녀를 떠올리곤 했다.” 극중 대우의 내레이션만큼이나 영화는 코믹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대사들로 넘쳐난다.

대우와 미나의 첫 키스 대우 : 이거 뭐예요? 미나 : 혀요. 싫어요? 빼요? 대우 : 빼지 마요. 빼지 마. 혀 너무 좋아~~.

침대 위 에서 미나 : 땀 때문에 씻어야 되는데…. 대우 : 괜찮아요. 저혈압이라서 짜게 먹어도 돼요.

장미와 미나의 식사 장미 : 넌 참 비위도 좋다. 어제는 쑤시고, 오늘은 썰고.

대우와 미나의 싸움 미나 : 지금 나한테 씨발이라고 그랬어요? 대우 : 네, 씨발이라고 했어요. 나도 화나면 욕해요. 미나씨 오늘 너무 씨발스럽다.

달콤, 살벌한 로고송

‘달콤한 남자~ 살벌한 여자~ 우연히 만나 연인이 됐네, 으하하하 무섭다 너무너무 재밌다.’ 최강희와 박용우가 영화 속 캐릭터들의 성격을 살려 <달콤, 살벌한 연인>의 로고송을 직접 불렀다. 대학 시절 그룹사운드에서 보컬까지 맡았던 박용우와 다년간의 라디오 DJ 생활로 녹음실 마이크와 매우 친숙한 최강희의 숨은 실력이 발휘되었다고. 귀에 익은 멜로디인 것 같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이 재치 만점 로고송은 CF 음악계의 마에스트로, 가수 김도향의 작품이기 때문. ‘*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 *동산 먹고 맛있는 파티’ 달콤 고소한 과자 ‘*동산’의 CM송을 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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