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초반부에 태수(유오성)과 민(정우성)이 오토바이가게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신. 이 신은 오토바이가게 앞에서 찍은 것이 아니고 사실 편의점 앞에서 찍었다. 오토바이가게 인서트는 따로 찍고 두 사람의 대화는 편의점에서 나오는 밝은 불빛을 이용해서 찍은 뒤 편집 때 붙인 것. 또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민이 두손을 손잡이에서 뗀 채 오토바이를 타는 신 역시 실제로 민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운전컷을 찍을 때 사용하는 레커차 위에서 찍었다. 결국 둘 다 가짜인데 두 신의 분위기만큼은 진짜 이상의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아름다운 시절>
총 131컷밖에 안 되는 영화 중에(칸에는 119컷이 갔다) 애정이 안 가는 컷이 있을까. 성민이네가 마차를 끌고 이사오는 풀숏은 원래 한번 촬영했는데 전봇대를 피해서 찍으려다보니 엉성한 앵글이 되어 맘에 안 들었다. 결국 그 자리에 있는 전봇대를 뽑고 가장 좋은 앵글에 자연광이 제일 좋은 시간대를 기다렸다가 다시 찍었다. 또한 애들이 방앗간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것을 찾으면서 노는 방앗간 신은 자연광이 아니라 실내라이팅을 만들어서 했다. 영화의 중요 모티브가 되는 방앗간의 느낌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려낸 신이다.
<태양은 없다>
이 영화에서 김성수 감독이 해보고 싶어한 것이 플래시 포워드였다. 홍기(이정재)와 도철(정우성)이 채무자의 과일가게를 습격하는 시퀀스에서 습격 전 상황, 가게습격장면, 실패하고 돌아와 옥상에 있는 장면, 이렇게 3장면이 믹스되어 편집돼 있다. 이건 편집 때 그냥 그렇게 붙여본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것이라 혼란을 피하기 위해 비주얼적인 면에서 완벽한 차별점을 두어 찍어야 했다. 습격 전 상황은 영화전체의 색조를 따랐고, 과일과게는 노란색, 옥상은 녹색조로 3개의 색깔로 나누었다.
<이재수의 난>
제주도는 말그대로 그림인 곳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카메라에서 프레이밍만하면 육안으로 보는 감동이 전혀 안 살아서 고생했다. 이재수(이정재)가 통인 시절 화산 분화구에서 소리지르고 팬하면 바다가 보이는 롱숏. 바람이 정말 세게 불어서 몸이 흔들릴 정도였는데 큰 스크린으로 봐도 팬하는 데 별다른 흔들림이 없는 것을 보고 나 스스로 칭찬할 만하다 생각했다.
<박하사탕>
지금까지 찍은 작품 중 가장 공들였고 심혈을 기울여 찍은 작품이다. 유독 비오는 장면이 많았던 영화인데 우리나라에는 비의 굵기를 제대로 조절하는 장비가 없어서 ‘부슬부슬’한 비를 만들기 위해 조명량을 많이 늘렸다. 영호(설경구)가 군산에 갔을 때 만난 선술집 아가씨와 하룻밤을 보내는 집 외부는 마포의 재개발지역에서 찍었고 실내는 세트에서 촬영했다. 빨랫줄에서 물이 한 방울 똑똑 떨어지는 장면부터 시작해 빨랫줄을 따라 두 사람의 알몸을 비추는 신. 아쉽게도 앞부분은 잘려나갔지만, 집 외부나 방안에 감도는 분위기가 좋았다.
<무사>
사막에는 아침해와 넘어가기 직전 해가 아니면 모든 사물이 밋밋하게 찍히고 입체감이 사라진다. 결국 풀숏은 아침 저녁에 집중적으로 찍었다. 해질 때만 되면 그 짧은 시간을 놓칠세라 스탭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걸 보고 안성기 선배는 ‘지랄숏’이라고 불렀다. 그중 사막의 익스트림 롱숏으로 점 같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장면은 영화의 초반부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자막의 배경그림으로 쓰였다. 또 마지막 전투라고 부르던 토성 전투신, 흐린 날씨에 비장미 있게 찍어내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검은색 고무타이어어 같은 걸 태워서 인공으로 검은 바람이나 구름을 만들어냈다. 또한 액션신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속으로 찍었다. <무사> 탭 전체 톤은 오렌지 빛깔인데 그 부분에서는 <태양은 없다>식의 무채색 느낌이 나도록 했고 영화 전체와의 확연히 다른 장면으로 만들려고 했다.
<봄날은 간다>
거의 모든 숏을 예쁘게 찍었던 것 같다. 허진호 감독이 세트촬영을 싫어해 세트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촬영공간이 늘 협소해 벽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상우(유지태)네 집은 골목길에 쭉 들어와 안쪽에 있는 집인데 골목이 영화에서 좋은 역할을 한 것 같다. 상우집 마당에서 할머니하고 상우하고 대화하는 장면의 경우,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개량한옥과 비슷하기도 하고 공간이 주는 정서적인 공감을 얻기 좋았다.
▶ 당신은 감정을 찍었군요 (1)
▶ 당신은 감정을 찍었군요 (2)
▶ 김형구가 말하는 “잊기 힘든 이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