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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는 `이 영화가 노리는 점`
2001-08-17

10살 소녀의 성장기, “말은 나의 의지, 나의 힘”

이 작품은 무기를 휘두르거나 초능력 자랑을 하지도 않지만, 모험 이야기라고 부를 수밨에 없는 작품이다. 모험 이야기지만, 선악의 대결이 주제는 아니다. 선인과 악인이 모두 섞여서 존재하는 세계 속에 던져져 수행하고, 우정과 사랑, 헌신을 배우고, 지혜를 발휘해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는 곤경을 이겨내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그것은 악을 없애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소녀 스스로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결과다.

많은 것에 둘러싸여 보호받으며, 그러면서도 소외된 채로 살아가는, 산다는 느낌조차 막연한 일상 속에서 아이들의 자아는 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치히로의 연약한 손발이나 시큰둥한 표정은 그 상징이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치히로는 자신도 알지 못했던 적응력과 인내력을 발휘하게 되고, 과감한 판단과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패닉상태에 빠져서 `세상에!` 하면서 웅크릴지 모르는데, 그들이 치히로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면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먹혀버릴 것이다. 치히로라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실은 잡아먹히지 않는 힘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예쁜 소녀이고, 비할 데 없이 뛰어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주인공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게 이 작품의 특징이며, 그래서 이 영화가 10대 여자아이들을위한 영화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말이 곧 힘이다. 치히로가 빠져든 세계에서는 내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는 무거움을 갖고 있다. `유바바`가 지배하는 목욕탕에서는 `싫다`, `돌아가고 싶다`라는 한마디만 입 밖에 내면 마녀들이 대번에 치히로를 내쫓아버릴 테고, 치히로는 딱히 갈 곳도 없는 상황에서 떠돌다가 사라지거나, 닭이 되어서 잡아먹힐 때까지 계란을 계속 낳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역으로 `여기서 일하겠다`고 말하면, 마녀라고 해도 그 말을 무시할 수가 없다. 오늘날, 말은 더할 나위 없이 가볍고, 무슨 말이든 거품처럼 느껴지자만 그것은 공허해진 현실의 반영이다. 아직도 말은 힘이다. 다만 힘이 없는 공허한 말이 무의미하게 넘치고 있는 것뿐이다. 유바바의 세계에서는 늘 잡아먹힐지 모르는 위기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이 세계 안에서 치히로는 오히려 씩씩해져간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치히로를 통해) 말은 의지이며 자아이며 힘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일본을 무대로 하는 판타지를 만드는 의미도 바로 거기에 있다. 옛날이야기 하나라도, 도망갈 문이 많은 서양의 이야기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참새의 집`이나 `생쥐 나리`같은 일본 옛날이야기의 직계손자라고 생각하고 싶다. 평행선상에 있는 세계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의 선조는 참새의 집에서 모험으 하고, 생쥐 나리와 함께 연회를 즐겨왔던 것이다.

유바바가 지배하는 세계를 서양식으로 만든 것은,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고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이미지의 보고인 일본의 전통적 디자인을 되살려내자는 뜻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하이테크놀로지에 둘러싸여, 얄팍한 공업제품 속에서 점점 심지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풍부한 전통을 갖고 있는지를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카치카치산이나 복숭아동자(일본의 대표적인 전래동화)는 분명 설득력을 잃었다. 전통적인 구조를 현대에도 통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선명한 색의 모자이크 한 조각으로 채워나가면서 영화의 세계는 신선한 설득력을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이 섬나라의 주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가, 관객인 10대 소녀들이 정말 자신의 소망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 미리보는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줄거리

▶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는 `이 영화가 노리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