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의 불가사의와 죽어 있는 것의 불가사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97년 <원령공주>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 이하 <센과 치히로…>)의 팸플릿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이 말에서 느낄 수 있듯 <센과 치히로…>는 선뜻 ‘이런 작품이다’라고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애니메이션이다.
지금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큰 스케일에 비해 내용이 난해하거나 복잡한 모럴을 요구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의 애니메이션에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관과 유년 시절의 동심으로 꿈꾸는 상상력이 담겨 있다. 즉, 국적이나 연령을 초월해서 즐길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는 그런 이전의 행보와는 확실히 다른 작품이다.
<센과 치히로…>는 지난 7월20일 일본 전역 도호 계열의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한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관객동원을 하고 있다. 출발 첫날부터 <원령공주>의 기록을 깸으로써, 미야자키 하야오를 넘볼 수 있는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밖에 없다는 가설조차 만들어낼 판이다.
이 작품을 본 것은 지난 7월 말,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로 우리에게 친숙한 ‘원폭의 도시’ 히로시마였다. 개봉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아서인지 두번이나 표가 매진돼 극장 앞에서 돌아서는 ‘아픔’을 겪고서야 겨우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미야자키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부를 수 있는 <센과 치히로…>의 무대는 망자의 혼과 온갖 요괴들이 등장하는 이상한 마을이다. 주인공인 오기노 치히로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10살짜리 소녀. 그녀는 부모를 따라 새로 이사갈 집을 찾아갔다가 마치 1920년대 사진첩에서 나온듯 고풍스러운, 그러나 인기척은 전혀 발견할 수 없는 마을을 발견한다. 치히로의 부모는 그곳의 빈 식당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주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걸신들린 사람처럼 마구 먹기 시작한다. 그런 부모를 말리다 지친 치히로는 마을을 돌아다니다 언덕에서 거대한 온천여관 ‘아부라야’를 발견한다. 묘한 귀기가 감도는 아부라야에서 섬뜩함을 느낀 그녀는 급히 부모에게 돌아가지만 금지된 ‘망자의 음식’에 손을 된 그들은 돼지로 변했다. 졸지에 부모없는 처지가 된 치히로는 ‘하쿠’란 낯선 소년의 도움으로 아부라야에서 일하게 된다. 탐욕스런 아부라야의 주인인 유바바와의 계약에 의해 ‘치히로’(千尋)란 원래 이름에서 ‘센’(千)으로 바뀐 채….
제목의 ‘센과 치히로’란 두 사람이 아닌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한 인물을 상징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아무런 고생없이 편하게 자라던 아이 치히로와 부모를 잃고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센.
이야기가 펼치는 중심무대인 온천여관 ‘아부라야’에 들락거리는 인물들은 우리로 치면 서낭당 귀신, 처녀귀신, 몽달귀신, 달걀귀신 등에 해당하는 일본 민담이나 전설 속의 각종 ‘잡귀’들이다. 치히로가 겪는 모험은 이들을 손님으로 맞아 온천에서 일하면서 우정과 사랑, 헌신을 배우고 위기에서 발휘할 지혜와 용기를 터득하는 과정이다. 안온한 부모의 그늘에서 받는 것에 익숙해 있던 소녀가 생경한 공간에서 남에게 무언가를 주고 헌신하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에는 ‘한 소녀의 환상적인 모험과 성장기’로 소박하게 정리하기에는 힘든 다양한 은유와 상징이 숨겨져 있다. 극중에서 ‘금단의 음식’에 손을 댔다가 돼지로 변하는 치히로의 부모는 고도성장기를 겪으면서 모든 일에 욕심이 많은 현대인에 대한 풍자이다. 그동안 발전의 동인으로만 봤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의욕은 상대에 대한 배려나 절제없이 자기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이기심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온천마을을 지배하는 마녀 ‘유바바’는 돈을 버는 일이라면 비정할 정도로 철저하면서도 자신의 아이 ‘승방’에 대해서는 온갖 응석을 다 받아주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이기적인 모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상냥한 듯 보이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선 냉혹한 면을 보이는 ‘하쿠’나 돈이라면 어떤 상황도 감수하는 온천의 종업원들도 결국 현대를 사는 일본인들의 공통된 얼굴이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얼굴없는 귀신 ‘가오나시’는 미야자키가 자신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캐릭터이다. 극중에서 치히로에게 호감을 갖고 쫓아다니는 가오나시는 말을 못한다. 다리에서 치히로와 마주쳤을 때, 여관 밖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는 남에게 자기 의사와 감정을 전혀 표현하지 못하고 안으로만 웅크린 딱한 귀신이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쓸쓸하다, 쓸쓸하다”인 그가 치히로에 대해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스토커’같다. 신비한 능력으로 만들어낸 사금으로 종업원들의 환심을 사 짧은 즐거움을 누리지만, 치히로가 자신의 금을 거부하자 어린애가 투정하듯 날뛰는 유아성. 어떤 면에서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숱한 캐릭터 중 가장 ‘유약한’ 인물인 가오나시에 이렇게 미야자키가 큰 비중을 둔 것은 왜일까?
미야자키는 한 인터뷰에서 “여러분 중 가오나시가 있다”는 말을 했다. 말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타인과의 대화가 편리해지고, 복잡해진 이 시대에 인간은 오히려 더 깊은 소외를 느끼는 것은 아닐까? 미야자키는 가오나시라는 가공의 존재를 통해 온갖 정보와 각종 미디어가 발달하는 속에서 오히려 진정한 의사소통의 기회를 상실해가는 현대 일본인의 모습을 빗대고 있었다.
<센과 치히로…>는 이렇듯 현대 일본인의 여러 단면과 사회에 대한 많은 질문과 감독의 주장을 담고 있다. 생기를 잃고 살아 있지만, 산 것이 아닌 현대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세상을 사는 힘’을 되찾는 것. 그것이 미야자키 감독이 궁극적으로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이다.
여기서 흥미있는 것은 미야자키가 전작 <원령공주>에서 보여주었듯이 초기의 코스모폴리탄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일본 고유의 문화와 전통에 강한 애정과 집착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그는 <센과 치히로…>에 일본의 고유한 놀이문화와 민담, 문화재에서 따온 다양한 소재들을 차용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온갖 귀신들이나 독특한 목욕문화 등은 모두 일본 전통에 대한 감독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일본의 중요문화재 중 하나인 도쿄 메구로의 아서원 내실을 비롯해 여러 대표적인 일본 건축물들이 애니메이션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미야자키는 스튜디오 지브리와 디즈니가 전략적 제휴를 한 이후 전보다 훨씬 일본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다. 과연 그의 선택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르지만, 다음의 말을 보면 그가 앞으로 애니메이션에서 구현하려는 세계가 무엇일지 명확한 방향성이 짐작된다. “역사를 갖지 못한 인간, 과거를 잊은 민족은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거나, 닭이 되어 잡아먹힐 때까지 달걀을 계속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품에 대해 한마디 더
* <센과 치히로…>은 일본 최초로 디지털로 채색, 촬영해 완성된 작품을 필름없이도 전용 프로젝트로 상영할 수 있는 ‘DLP’시스템으로 제작됐다.
* 원제목의 ‘가미가쿠시’(神隱し)는 정확하게 ‘신에 의해 숨겨졌다’, 즉 이유를 알 수 없이 종적을 감춘 것을 뜻한다. 우리말에는 없는 의미이다.
* 주제가 ‘항상 몇번이라도’는 원래 <센과 치히로…> 이전에 장편으로 기획했던 <굴뚝으로>를 위해 만들었던 곡. 직접 노래를 부른 기무라 유미가 <굴뚝으로>의 구상을 듣고 곡을 만들었으나, 기획이 무산되면서 노래는 사장됐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새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떠올렸고, 이것이 <센과 치히로…>를 만드는 데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
김재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 미리보는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줄거리
▶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는 `이 영화가 노리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