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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만난 빌 플림턴
2001-08-10

“어, 내 손을 통제할 수가 없어”

+ 아직도 셀에 그림을 그리는 비교적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하나의 장편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간 작업하나.

= 이번에는 한 20∼30명이 2년 반 정도? 아주 저예산이어서 사람을 많이 쓸 수 없었다. 난 혼자서 일을 많이 한다. 백그라운드, 스토리보드, 각본, 프로듀서, 애니메이션, 레이아웃 다 직접 했다. 불평하는 건 아니다. 그건 나한테 재미니까. 어려운 건 영화를 파는 거다. 페스티벌에 가서 배급자들을 만나고, 영화를 위한 돈을 구하는 것. 내 단편들은 인기가 있어서 돈을 꽤 벌었다. 장편은 이익을 내기도 어렵고, 본전을 찾기도 힘들다. 장편 중에는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2>를 제외하면 돈을 다 회수한 작품은 없다.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도 돈을 벌긴 했지만, 제작비를 다 회수하지는 못했다.

+ <뮤턴트 에일리언>의 제작비는 얼마였나.

= 20만달러. 내 인건비 빼고.

+ 어떻게 살아가나.

= 단편과 광고로. 인터넷으로 비디오와 책도 많이 팔았고. 사실 꽤 돈이 된다.

+ 컴퓨터를 많이 쓰나.

= 안 쓴다. 사운드를 위해서는 컴퓨터를 쓴다. 나한테 컴퓨터는 아주 어려운 것이다. 우선 아주 비싸고, 느리고, 나오는 그림도 너무 기계적이다. 인간적이지 않고, 그 그림의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슈렉>을 봤는데, 보기에 좋지 않았다. 픽사는 좋아하지만, <개미>나 <슈렉>은 별로였다.

+ <이트>는 어떻게 만들었나.

= 원래 <이트>를 구상할 때는, 오스카를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성적이라고 생각한 아이디어, 아름다운 레스토랑에서 개개인들이 작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랑스러운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까 이 미친 생각들이 자꾸 살아나서 어, 내 손을 통제할 수가 없어, 이렇게 되는 거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난 한번도 토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과연 토사물의 색깔이 어떨까 궁금했다. <이트>를 만들려고 친구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물었더니 초록색이다, 노란색이다, 핑크색이다, 다 달랐다. 결국 먹은 것에 따라 다 다르게 나오는구나 하는 걸 알고 갖가지 색을 집어넣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가다보니 애초에 내가 만들고 싶었던 종류의 영화는 아니게 됐다. 하지만 재밌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도 좋아해줬고. 뭐 오스카 후보에는 못 올랐지만.

+ <뮤턴트 에일리언>도 그렇지만, 당신의 작품들은 섹스와 폭력을 과장해 극단적인 유머를 끌어내는 식이다. 그걸 즐기는 사람만큼이나 불쾌해하는 사람도 많지 않나.

= 사실이다. 내가 변태라거나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그렇지 않다. 베트남전 때 난 대학생이었는데, 베트남 참전을 피하기 위해 방위군에 입대했다. 그래도 군대라고 사격훈련이 있었는데, 난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은데 왜 이런 훈련을 해야 하냐고,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랬더니 소령이 와서 총을 쏘지 않으면 군법회의에 회부된다고 협박하더니 나중에 포스터부, 일종의 미술부로 보냈다. 난 정말 폭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쳐본 적도 없다. 하지만 폭력과 연결된 유머의 역사가 있다. 막스 형제, 버스터 키튼, 스리 스투지스 같은. 거기에는 뭔가 사람들을 웃기는 게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내가 폭력에서 유머를 극도로, 그러니까 초현실적으로 과장하는 이유다. 그러면 그냥 폭력이 아니다. 폭력을 넘어서 농담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더 큰 문제가 되는 건 내 작품의 폭력이 아니라 섹스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뭔가 섹시한 것을 보면 자라는 걸 바라지 않는다.

+ 여성을 섹스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그린다든가, 포르노그라피 같이 묘사하는 게 여성비하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 난 섹스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도 남성만큼이나 섹스를 즐긴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섹스를 그만두면 인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다. <이트>에 나온 여성을 보고 누군가는 나를 ‘여성혐오자’라고 논평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우선 내 스탭의 80%는 여성이고, 가장 친한 친구들도 여성이다. 난 남성보다 여성하고 더 잘 어울린다. 아마 <이트>에서 여성을 수다스럽게 그린 게 기분 나빴던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런 사람들은 모든 여성이 완벽하고 천사 같은 영웅이길 바라고, 남성은 나쁘길 바란다. 하지만 남성이 결점이 많고 완전하지 못하듯, 여성도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여성만 영웅으로, 완벽하게 그려내는 건 별로 좋은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캐리커처와 펜선이 강한 만화적인 스타일을 바꿔볼 생각이 있나.

= 다음 작품은 미국의 50∼60년대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머리(hair)를 일종의 섹시한 이미지로 만들고 싶다. 그때는 부풀린 머리가 인기있고, 섹시한 스타일이었다. 그걸 성적인 힘에 대한 은유로 쓰고 싶다. 가제는 <헤어 하이>다. 결말이 아주 폭력적이고 섬뜩한, <캐리>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그림은 좀더 양식화되고 세련되면서도 더 만화적인 스타일로 갈 것이다. 지금 각본을 쓰고 있는데, 가을쯤 책이 나올 거고, 2002년쯤 애니메이션을 시작할 거다. 2003년쯤에 완성되지 않을까.

글 황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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