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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장의 초상, 75살의 푸르름
2001-08-03

“나는 돌아간다. 욕망의 분수대로” (2)

외설적이고 어처구니없는 판타지 <…따뜻한 물>

“그럼 무리해서 질문을 해보시오.”

이 노인의 머릿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어떻게 여자의 몸에서 물기둥이 솟아오르고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외설적이고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없는, 그러나 통쾌하기 짝이 없는 판타지가 75살 감독의 것이 될 수 있었을까. 젊은 시절보다 어떻게 더 발칙하고 자유분방할 수 있을까(이 시점에서 이마무라에게 먼저 고백을 했다. 칸영화제에 가지 않았던 질문자는 아직 <…따뜻한 물>을 보지 못했음을. 그러나 그 영화를 소개한 글들만 봐도 궁금함을 참기 힘들어,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질문을 하게 됐음을. 이마무라는 씩 웃으며 대꾸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그 영화에 대해 물어본다고? 그래, 그럼 어디 무리해서 질문을 해보시오.” 가벼운 잽인데, 맞는 사람은 아찔하다. 식은땀 나는 한방이다).

그런 초현실적인 묘사를 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습니까.

“처음엔 고민을 했지. 이게 오버는 아닐까 하고.

진짜 여성의 몸에서 그렇게 많은 물이 솟아나진 않을 테니까. (웃음) 그런데 일단 펌프로 물을 뿜어올려 보니까 마침 햇빛이 걸려서

무지개가 생기더라고. 그걸 한참 보고 있으니까, 이게 괜찮아. 나중엔 더 과장되게 했지, 뭐.”

어떻게 그런 표현을 생각하게 됐습니까.

“도야마현이라는 어촌에서 촬영했지. 여배우(시미즈

미사)의 고향이기도 해서 이 어촌을 배경으로 뭐 좀 재미있는 걸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지. 오줌말고 뭔가 물이 나오는 거 말이야.

처음엔 컴퓨터그래픽을 써서 물고기말고도 새도 날아들게 하려고 했는데, 컴퓨터그래픽이 좀 힘들어졌어. 그래서 물고기만 모았지,

뭐. 어쨌든 이 지역 노인들도 이 장면 찍는 거 보고 아주 좋아하더라고.”

(기대할 법한 ‘심오한’ 연출 의도를 이마무라는 좀처럼 들려주지 않는다. 자격미달 인터뷰어로서의 자괴감을 억누르고, 질문방향을 좀 바꿔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 나오는 부랑자 노인은 “모든 걸 잊고

여자를 품게…”라고 말합니다. 이건 감독님의 말처럼 들립니다.

“나와 가깝기는 하지. 그 노인을 연기한 기타무라

가즈오가 내 친구야. 나이도 같고, 내 초등학교 등급생이야. 50년된 친구지.”

칸영화제에 참석한 프로듀서 이노 히사는 인터뷰에서

영화 속의 부랑자 노인이 감독의 분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대사는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직접 쓴 것이라고도 했는데.

“그 친구, 그렇게 말하면 편하니까 그런 거지 뭐.

나는 그냥 이 기획에 충실했던 거야.”

앞선 두 영화 <우나기>와 <간장선생>의

주인공은 금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물>의 주인공은 마치 감독님의 60년대 작품의 주인공처럼 욕망 추구에

적극적입니다. 60년대의 이마무라로 돌아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생각이 변해서 그런 건 아니고, 난 그냥 그때그때

기획에 따라 찍는 것뿐이야.”

칸영화제에서 야쿠쇼 고지는 이렇게 말했다. “감독이 원했던 것은 미치도록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관객이 재미, 어색함, 불안감을 느끼기를 바랐다.” 프로듀서 이노 히사는 사실상 이마무라 감독의 생각이기도 하다며 원작자인 헨미 요의 발언을 낭독했다. “나는 일상적인 정념과 본능을 과장과 뻔뻔함 없이 그리고 싶었다. 일상적인 정념과 충동은 나의 적이자 동지이다. 그러니 항상 포로인 내가 어떻게 그 충동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저널리즘에서 받아적기에 딱 좋은 멋진 말들이지만, 이런 얘기를 이마무라에게서 듣긴 힘들었다.

마지막이라는 얘기는 이제 그만

겉모습도 그렇지만, 주변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마무라 쇼헤이는 노쇠의 자연법칙를 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촬영현장에서 조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고 한다. 양시영 프로듀서는 “그러다가도 일단 카메라가 돌아가면 갑자기 딴 사람이 된다. 놀랄 만큼 명석하게 현장을 지휘한다”고 전했다. 자연이 허락한 한정된 심신의 에너지 전부를 이마무라는 필름에 현실의 입자가 새겨지는 순간에만 쏟아붓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영화로써든 말로써든 어줍잖은 관념과 진부한 수사에 매달리는 우중을, 노쇠를 가장해, 시치미 뚝 떼고 엿먹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글머리의 오즈 조감독 시절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혹시나 해서 최근 일본교과서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이마무라는 준비된 <마이니치 신문>의 사설을 읽어주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국가는 역사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허구적 장치를 필요로 해왔으며, 문제의 교과서도 그런 장치의 한 종류”라는 요지의 차분한 비판론이었다.

감독님 영화의 일본인들은 욕망에 따라 좌충우돌하는데,

실제 일본인은 대단히 응집력이 강합니다.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본사람들은 명령을 잘 들어. 순응적이라는 말이지.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을 갖고 있는 건 좋지 않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그래서 나는 자기 욕망을 표출하는 캐릭터를

그리는 거야.”

앞으로 어떤 작품 계획이 있는지요.

“어떤 기획이 있는데, 아, 저기, 프로듀서가 말하지

말라고 그러네. 어쨌든 있어. 이게 마지막이라는 얘기는 이제 안 해야겠어. 한 세 작품 정도 하면 끝날 것 같아. 그중 하나는

지난번에 말했던 10대 이야기 <잉어>야. 아직 시나리오도 안 나왔지만."

부산영화제 때 오실 건지.

“음, 그럴 계획이야. 그때 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내 영화는 틀 테니까 그때 영화를 보면 되겠군.”

이마무라 쇼헤이는 7월24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의 소망대로 세편의 영화를 너끈하게 만들어 우리를 그때마다 엿먹여줬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또한번 쩔쩔매더라도, 건강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허문영·사진 이혜정 기자

▶ “나는 돌아간다. 욕망의 분수대로” (1)

▶ “나는 돌아간다. 욕망의 분수대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