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성공적으로 폐막, 지난해보다 관객 4천명 늘어, 부천 초이스 장편작품상 <뉴질랜드 이불 도난 사건>에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9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7월20일 닻을 내렸다. 판타스틱영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어느 해보다 넓게 펼쳐보인 35개국 140편의 장·단편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한 올해 부천영화제의 상영관을 찾은 관객은 7월20일 현재 3만8443명(야외상영 관람객 1만명 별도). 입석까지 매진된 20일 심야상영과 21일 심야상영 입장객을 더하면 총관객 수는 약 4만명에 이르러, 유료 일반관객의 수에서 4회 영화제를 4천명가량 웃도는 알찬 ‘흥행’을 기록했다. 개막 전부터 영화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호금전 특별전은 예상을 넘어서는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 <용문객잔>과 <충렬도>가 1회씩 추가상영을 됐고, 지난해 신설된 제한구역 역시 섹션의 차별성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부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겨냥하는 관객의 고른 호응을 샀다. 심야상영, 씨네락 나이트, 그린 콘서트 등 전통적인 부천의 인기 프로그램들은 올해도 강세를 지속했다. 특히 6회에 걸친 심야상영이 전회 매진된 것은 물론, 악천후에도 관객이 몰려 이번 영화제부터 세우려 했던 ‘심야 입석 불가’ 원칙을 깨뜨리는 즐거운 ‘아픔’을 겪기도 했다. 2회 때부터 출품 단편의 완성도에 관해 지켜온 자존심에 걸맞게 판타스틱 단편걸작선과 부천 초이스 단편 섹션도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했다.
<티어스 오브 더 블랙 타이거>, “용감하고 정직한 영화”
프로그램에 대한 관객의 만족도가 예년보다 높았던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부천 초이스 장편부문 작품상의 영예는, 사랑을 시험하다 곤욕을 치르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마술적 리얼리즘의 붓으로 그려낸 해리 싱클레어 감독의 현대적인 우화 <뉴질랜드 이불 도난 사건>이 차지했다. 관객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능력과 독창성과 순수성, 창의성에서 좋은 평점을 얻었다. 20일 오후 7시 부천 시민회관에서 거행된 폐막식에서 방한 못한 감독 대신 트로피를 안은 주연 다니엘 코맥은 “개인적인 기쁨을 좀 표현해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한 뒤 무대 위에서 발랄하게 환호했다.
지난해 신설된 심사위원 특별상은 타이판 스파게티 웨스턴 <티어스 오브 블랙 타이거>에 돌아갔다. 심사과정에서 <티어스…>를 강력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로이드 카우프먼 감독은 시상식 현장에서 “용기있고 재능있고 정직한 영화”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주연배우 수파콘 키추완은 <아리랑>의 한 소절을 흥얼거려 화답했다. 감독상은, 교통사고 이후 반복되는 하루 속에 갇힌 젊은 여성의 절대적 고독을 수채화처럼 그린 일본영화 <턴>의 히라야마 히데유키 감독에게, 남우주연상은 관객상을 수상한 독일 코미디영화 <시체유기 자장가>의 보리스 아리노비치에게 돌아갔으며, 영화제 기간중 로카르노 본선 진출의 희소식을 접했던 문승욱 감독의 <나비>는 TV드라마 <은실이>로 알려진 신인 강혜정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 성인 배우로서의 앞날을 축복했다. 임순례 단편심사위원장이 “경쟁작 수준이 모두 높아 심사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고초를 토로하게 한 부천 초이스 단편부문에서는 빌리 오브라이언 감독의 <쥐, 글을 쓰다>가 대상과 함께 5천달러의 상금을 받았고, 코닥상-단편심사위원상은 피르길 비트리히 감독의 <복사 가게>, 관객상은 돈 헤르츠펠트 감독의 <퇴짜>의 품에 돌아갔다.
시스템 안전 착지의 해
폭우와 폭염을 뚫고 부천영화제를 찾은 해외 영화인은 약 70명. 그중에서도 제한구역 출품 감독이자 심사위원으로 부천을 찾은 로이드 카우프먼 감독은, 고무마스크맨 ‘톡시’를 동반하고 영화제 현장과 술자리를 누비며 트로마 프로덕션의 홍보물을 직접 돌려 비주류 감독의 생존방식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틈만 나면 상영관과 프레스센터에서 비디오로 한국영화를 비롯한 출품작을 섭렵하는 에너지까지 과시해 감탄을 산 카우프먼은 폐막식장에서 부천영화제에 ‘톡시상’을 수여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카우프먼은 아비뇽영화제와 도쿄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이 상을 헌정(?)한 바 있다. ‘누드 홍보’로 개막식을 들썩이게 한 <네이키드 어게인>의 너트슨 형제감독도 올해 부천의 빼놓을 수 없는 ‘핀업 스타’. 이 밖에 피에르 리시앙, 토니 레인즈,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 등이 메가토크를 주무대로 이야기손님 노릇을 톡톡이 했다. 반면 호금전과 존 배리를 추억하는 메가토크에서 값진 경험을 들려줄 것으로 기대됐던 쉬펑과 대니 글로버가 급작스런 개인사정으로 불참해 아쉬움을 낳았다.
한편, 상영작에 대한 만족이 높았던 것에 비해 상영관 밖에서 잔치 분위기를 북돋우고 관객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이벤트가 적어 “영화만 보고 가는 영화제”라는 인상이 진했다는 것이 올해 부천영화제를 찾은 관객의 공통된 소감. 메가토크 진행, 통역부터 심야상영 입장 통제에 이르기까지 영화제 도처에서 신출귀몰하며 발로 뛰는 집행위원장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 김홍준 집행위원장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관객의 눈으로 볼 때 영화제란 프로그램이 50%, 운영이 50%인데, 5회 영화제는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그 두 가지 측면에서 완벽해지는 데 뭐가 더 부족한지 알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든다는 각오가 최우선이었기에 올해는 씨네락 나이트 등 입증된 프로그램을 보완하면서 혁신적 시도는 일부러 자제했다. 지금부터는 영화와 유리되지 않는 축제의 정체성을 고민할 때”라고 답했다. 실제로 ‘무사고 원년’, ‘시스템의 터닦기’를 내부 슬로건으로 내건 해답게 5회 부천영화제는 운영면에서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일반관객의 반응이다.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부문의 <이노센스>가 20분가량 자막이 나오지 않은 사고를 제외하면, 개막 3일째 이후 상황실에는 이렇다 할 영사 사고가 거의 보고되지 않았으며 스탭들의 서비스와 자원봉사단의 활동은 조직화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고, 셔틀버스 운행도 배차간격에 대한 약간의 불만을 제외하면 큰 무리없이 이루어졌다. 다섯 번째 축제를 통해 비로소 정교히 가다듬어진 항해지도를 손에 넣었다고 자부하고 있는 부천영화제의 다음 출항이 더욱 기대된다.
글 김혜리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오계옥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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