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작 <타인의 취향>의 대대적인 성공 뒤 1년이 지났다. 이후 달라진 게 있다면.
= 우리(동반자 장 피에르 바크리와 함께)는 첫 연극 <요리와 의존성>부터 큰 성공을 얻는 행운을 누렸다. 놀랍고 기쁜 경험이었는데 무엇보다 성공이 큰 자유를 가져다줬다. 작품을 고르고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경제적 자유와 예술적인 자유를 누리게 됐다. 이후 아무런 압력없이 원하는 작품을 쓰고 원하는 배우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건 아주 소중한 행운이다. 이후 타인과의 관계도 물론 변화가 있었다. 성공과 유명세는 관계를 변질시킨다. 이것 자체가 한편의 영화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거다.
+ 배우로, 특히 시나리오 작가로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어떻게 감독으로 데뷔할 생각을 하게 됐나.
= 오랜 과정을 거쳤다. 내가 작가로 일하게 된 건 바크리를 만나면서부터다. 이후에도 배우로 좋은 배역, 아니 그냥 배역 자체를 소극적으로 기다렸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뒤로도 한동안은 연출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의 시나리오가 감독들에 의해 작품화되는 것이 좋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쓰다가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감독들과 다른 이미지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이제 이런 이미지들을 ‘검증’해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과정을 통제할 순간이 왔다고 판단했다.
+ <타인의 취향>을 보는 동안 관객이 엄청 웃는다. 그렇지만 프랑스 평론가들이나 기자들은 당신 영화를 일반 코미디와 분류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작가적 코미디’라든가 ‘자우이-바크리만의 장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분류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 항상 이런 분류나 정의, 명칭에 거부감을 느낀다. 프랑스 기자들은 항상 사람들을 정의해내려고 애쓴다.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에는 관객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나나 주변의 친구들을 관객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랄까. 나중에 영화가 완성된 뒤,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들면 다행이고.
+ 좋아하는 감독들도 유머에 민감한 감독들일 것 같다.
= 좋아하는 감독들은 무척 많다. 장 르누아르, 에른스트 루비치, 우디 앨런, 니키타 미할코프, 에릭 로메르, 스탠리 큐브릭, 잉마르 베리만, 난니 모레티, 구로사와 아키라, 자크 드미 등….(우디 앨런이나 난니 모레티 정도를 뺀다면, 유머에 민감한 이들은 아닌 듯.-필자)
+ <타인의 취향>은 코미디의 외양을 갖췄지만, 사실 ‘배타주의’란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당신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당신에게서 어떤 면에선가 사회현상을 꾸준히 관찰하는 사회학자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어떤 식으로 영화의 주제에 접근하나.
= 이런 지적을 해줘서 고맙다. 바크리와 함께 우리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이런 인간행동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의해 규정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편견과 순응주의다. <타인의 취향>의 주제, 즉 분파주의를 다루기 위해 늘 그러듯이 먼저 주제를 정하고 이후 이 주제를 드러낼 등장인물들을 생각했다.
+ 바크리가 연기하는 주인공 ‘카스텔라’는 돈은 있지만 교양은 없는, 보통사람이고 그가 사랑에 빠지는 연극배우는 자기 세계에 갇힌 오만한 인물로 보인다. 두 사람간의 넘지 못할 벽이 마지막에 어느 정도 무너져 보인다. 영화가 우리 속의 편견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하나.
= 그러길 바란다. 샤샤 기트리가 말하길 “나는 몰리에르의 <구두쇠>를 보러온 관객이 극장의 옷 보관을 맡는 아줌마에게 더 친절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기트리보다는 덜 비관적이다. 1만명의 관객 중 한명이라도 영화를 본 뒤 조금 변한다면 이미 상당한 것이다. 나만 해도 문학과 영화가 살아가고 사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가 나름의 방식으로 ‘배타주의’을 몰아내는 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 그렇지만 <타인의 취향>을 보는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주인공을 보면서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하겠지만 영화를 본 다음에는 주인공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 어려운 주제일수록 유머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 유머가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웃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바크리는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다. 유머가 있다는 건 분명 다른 관점,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머는 또 꼭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어떤 주제나 감정들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한다.
+ <타인의 취향> 시나리오 역시 당신의 동반자인 바크리와 공동작품이다. 실제 어떤 식으로 공동작업을 해나가나.
= 모든 것을 같이 쓴다. 매주 5일 동안 오후 3시에서 7시까지 각자 종이와 펜을 들고 작업한다. 모든 면에서 많이 토론하고 동의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모두 기록한다.
+ 2∼3년 전부터 프랑스에서 여성감독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민감한가? 작업하는 데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영향을 끼치나.
= 다른 ‘권력’을 가진 직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점차적으로 감독이라는 직업에 여성들이 포진해 들어왔다. 이는 사회의 발전에 상응하는 것이다. 배우로서는 여성이라는 것이 불이익을 가져온다.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재능보다 외모가 종종 더 중요하게 여겨져 역할이 점점 줄어든다. 이것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불이익을 당한 기억이 없다. 감독으로서도 마찬가지다. 배우나 제작자, 촬영팀과의 관계가 내가 남자였더라도 똑같았을 것 같다. 여성의 시선을 담은 스타일이나 관점을 얘기하자면… 이런 아이디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로서는 좋은 예술가는 자기가 창조해낸 등장인물들, 남자건 여자건 부자건 가난하건 관계없이, 이들의 위치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무엇보다 같은 인간이 아닌가.
+ 현재 어떤 작품을 준비중인가.
= 내가 연출할 새 작품을 바크리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그렇지만 먼저 배우로서 바크리는 클로드 베리의 신작에, 나는 로랑 부니크의 작품에 참여할 예정이다. 흥미로운 질문을 해줘서 고맙고 한국관객에게 안부를 부탁한다.
파리=성지혜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