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제작자

제작비? 이번에도 많지. 걱정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어떡하겠어. 임 감독이 하는 영화고, 또 내용을 보면 그만큼 들 영화야. 앞으로 우리가 영화 만들면 얼마나 만들겠어. 할 수 있는 동안, 좋은 영화 한편이라도 더 만드는 게 잘하는 일이지. 그런데 이번엔 느낌이 좋아. 늘 그러긴 했지만 이번엔 특히 좋아.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애. 배우들도 이뻐. 유호정은 내가 부부를 불러 이야기했어. 요즘 너희들 애기 낳으려는 거 아는데, 이번에 영화도 만들고 애기도 만들자고. (웃음) 서로 열심히 해보자고. 애기 생기면 촬영중이라도 휴가 줘야지.

임권택 감독

<취화선>은 조선말기의 천재화가 얘기지만, 오늘의 얘기고 내 모습이 들어 있는 얘기다. 뿌리를 잃고 떠돌며 살 수밖에 없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장승업은 방랑과 기벽을 일삼은 자유인이었다고 전해지는데,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험한 시대를 살면서, 그리고 자기의 삶과 뜻을 예술로 표현하려는 사람은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삶을 떠올리면 내가 거기에 투영되는 걸 어쩔 수 없다. <취화선>는 나로선 개인의 삶을 따라가는 첫 영화고 내 개인이 가장 많이 담긴 영화가 될 것 같다.

정일성 촬영감독

걱정이 태산이다. 한폭의 산수화에는 로앵글과 하이앵글이 뒤섞여 있다. 또 족자나 병풍의 프레임은 카메라와는 전혀 다르다. 이걸 카메라로 담는다니, 미칠 노릇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게 있다. 동양화엔, 특히 장승업의 그림엔 서양화엔 없는 번짐의 미학이란 게 있다. 생략하고 단순화하지만 세밀함을 뛰어넘는 번짐의 미를 잘 전한다면 서양인들도 놀랄 거다. 또 하나, 한국 산수화엔 자기 땅에 대한 화가의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아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거다. 나도 영화를 그렇게 찍으려고 애써왔다. 그런 마음이 만나기를 기대한다.

최민식(장승업 역)

한동안 동양화 배웠고, 요즘엔 단소도 같이 배운다. 종합예술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웃음) 그럭저럭 붓 잡는 자세 흉내는 내지만, 솜씨는 형편없을 거다. 하지만 기능이 조금씩 나아지더라도 정말 문제는 인물 만드는 거다. 기인쪽에 너무 기울면 경박해지고, 너무 무겁게 가면 인물의 생기가 죽는다. 힘들다. 그저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할 뿐이다. 그림은 나한테 맞는 것 같다. 영화 끝나도 계속 그림 그리고 싶다. 일거리 떨어지면 이게 혹시 도움되지 않을까? (웃음)

유호정(매향 역)

매향은 장승업과 유일하게 인연이 평생 이어지는 기생이다. 장승업의 정신적 친구이자 연인인 셈이다. 처음 캐스팅 제의받고는 주저했다. 너무 큰 연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안 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하기로 마음먹었다. 풀숏으로 테스트 촬영 한번 하고는 충격받았다. 뒷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망신이겠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승업이 단소 불 때, 생황 불어야 하고 그림 그릴 때 글씨 써야 하니, 그걸 모두 배우고 있다. 힘들고 즐겁다.

안성기(김병문 역)

김병문은 장승업 인생의 안내자 혹은 후견인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장승업이 피폐해지고 방황할 때 조용히 이끌어주는 역할이다. <축제> 뒤로 5년만에 임 감독님 작품을 하게 됐다. 다른 현장에선 늙은이 취급 받는데, 여기 오니 어린 축에 들어(웃음) 좋다. 무엇보다 마치 고향에 온듯한 푸근한 느낌이다. 임 감독님은 여전하신 것 같다. 나이도 더 먹지 않으신 것 같다. 늘 도전하고 실험하시는 모습이 격려도 되고 질책도 된다. 임 감독님의 현장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 특히 좋다.

▶ 장승업, 드디어 붓을 들다!...<취화선>

▶ <취화선>을 만드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