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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홍준 집행위원장
사진 오계옥김혜리 2001-07-11

“부천은 아날로그의 전통을 잇는다”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제일 편하세요?”라고 묻자, 김홍준(44) 감독은 ‘감독’도 ‘위원장’도 ‘(영진)위원’도 ‘선생님’도 모두 다 편하다고 말했다. <장미빛 인생> 그리고 <정글 스토리>. 삶의 꺼칠한 얼굴을 맨살 그대로 렌즈에 담은 아주 리얼한 영화를 만들었던 김 감독은, 지난 2월27일부로 판타지영화 축제의 호스트가 됐다. 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버린다는 그에게, 7월12일 개막하는 영화제 준비가 ‘시뮬레이션 훈련’ 단계에 들어가고, EBS의 <한국영화 걸작선>을 몰아서 녹화하느라 밤을 새면서 영진위 일과 영상원 학생들 성적까지 처리하는 요즘은 ‘게으름 지수’가 마이너스로 치닫는 나날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연방 울어대는 휴대폰에 응하며 종이 케이스가 끼워진 다이어리를 꺼내 0.7밀리 샤프펜슬로 스케줄을 채워 가는 김홍준 위원장에게 수첩이 예스럽다고 참견하자 금세 “물에 젖어도 되고 전자파도 발생하지 않는다”며 합리적으로 설명해준다. 그의 말 속에서 언제나 혼돈은 정리되고 문제는 명백해지며, 해결 방안은 가능성의 순서대로 단정하게 늘어선다. 긴 시간을 들여 올해와 더 먼 미래의 부천영화제를 위한 명료한 도면의 두루마리를 펴보인 그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스탠리 큐브릭의 DVD 세트가 막 배달됐다고 소년처럼 자랑하며 자리를 떴다.

-언젠가부터 영화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부천영화제 일을 1997년에 처음 맡았고, 영상원의 객원 전임이 된 것은 1998년, 영화진흥위원은 2000년에 시작했다. 본디 이렇게 동시에 많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책임감의 힘이 크다. 문제는 여러 일을 하다보니 쉬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이제 다른 쪽 일로 모드를 전환하면 그것이 곧 한쪽 일의 휴식이 되는 것 같다. 영진위가 한창 어려웠고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맡아 평생 가장 힘들었던 올해 초는 마침 학교가 방학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없어 고민에 계속 빠져 있게 되니 그게 오히려 곤욕이더라.

-프로그래머를 사퇴하게 했던 원인은 해소됐나. 지역사회의 요구와 마찰이 있었던 건 아닌가.

=프로그래머로서 일이 더이상 새롭지 않다고 느꼈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사퇴의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 영화를 찍는 일이 그리 절박하지는 않다. 부천 지역사회도 균질적 집단이 아니고 시민들 안에도 영화제를 대하는 다양한 성향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가능하면 각 집단의 요구를 수용하고 일관된 목소리로 설득하는 창구 역할을 할 것이다.

-프로그래머로서 일할 때와 차이는.

=영화제에 맞는 작품과 게스트 섭외를 공격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프로그래머의 일이었다면, 집행위원장으로서는 살림꾼 노릇을 하고 싶다. ‘업무 플로’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사무국 부서별로 각기 갖게 마련인 욕심을 갈등이나 충돌이 아닌 합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첫째다. 영화제를 만들어가는 업무들은 이질적이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이 안 되면 곧장 카오스다. 예컨대 작품 수가 늘어나면 번역, 출판, 카탈로그, 자원활동가, 상영팀으로 연쇄 과부하가 걸리고 결국 펑크가 나 관객에게 피해를 주는 거다. 한편으로는 영화제 집행부 책임자로서 어떻게 인적 자원과 인프라를 안정시킬지 구체적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는 바람직한 리더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책방 가면 괜히 ‘훌륭한 리더가 되는 법’ 같은 책을 기웃거리게 된다. (웃음) 프로그래머를 할 때에는 개인 김홍준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어 김홍준 영화제라는 말도 들었는데 집행위원장은 반대로 스탭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다. 집행위원장이라는 우리말은 왠지 관료적인 느낌을 주는데, 정확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제가 영화라면 프로그래머는 감독이고 집행위원장은 익제큐티브 프로듀서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유바리와 도쿄판타스틱페스티벌의 요이치 고마즈자와 집행위원장은 ‘페스티벌 프로듀서’라는 신직종을 만들어냈는데 말되는 표현이다.

-영진위의 경험이 집행위원장직 수행에 도움이 되나.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공적 기구 안에서 예산, 조직, 정책을 조율하는 법이라든가, 정관, 규정, 협약 같은 것에 대한 감을 공부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는 것은 회의 진행하는 요령이고. 대학 다닐 때 답사간 마을에서 만난 이장님은 몇살 때 결혼하고, 집사고, 이장이 되겠다는 계획을 이미 스무살 때 완벽하게 짜놓고 그대로 사신 분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이분과 정확하게 반대의 인간형이다. 초등학교 때도 누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편의상’ 과학자가 될래요 했지만 그냥 접대용 멘트였다. 지금도 내겐 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몇살쯤엔 기어이 무엇을 성취해야지 하는 개념이 없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마치 모든 일을 예정한 것 같다. 감독이 되기 위해 영화동아리에 들고,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되기 위해 공공 기관에서 일을 하고 교수가 되기 위해 책을 쓴 것 같지 않은가. (웃음) 어쨌거나 반복을 싫어하고 호기심이 많고 냉소적이기 때문에 낙천적일 수 있는 나에게 지금 사는 방식은 잘 맞는 것 같다.

-부천영화제에서 오래 일할 생각인 것 같다.

=‘종신직’이라는 농담 섞인 표현도 썼지만, 집행위원장으로서 영화제 10주년은 맞이하고 싶다. 그래서 10주년 되는 해에 역대 페스티벌 레이디를 다 초청하면 “부천영화제에 스타가 없다”는 말은 다시 안 나오지 않을까? (웃음)

-여느 해보다 프로그램의 색깔이 다양하다. 특히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부문에는 언뜻 봐서 ‘판타스틱’이란 표현에 딱 들어맞지 않는 영화들도 있다.

=지난해가 도발적이라면 올해는 전체적으로 다양성을 강조한 프로그램이다. 그건 우리가 의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런 영화들이 나와줘야 가능한 일인데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경쟁부문 부천 초이스는 ‘판타스틱’을 좁은 의미로 해석한 영화들을 모은 섹션이고 해당 장르 안에서 경력을 쌓았으나 덜 알려진 감독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반면 월드 판타스틱은 판타지의 정의에 구애받지 않는 대중성에 초점을 둔다. 판타스틱영화제를 장르로 규정된 영화제로 보거나 마니아들을 위한 영화제로 보는 생각은 수능시험적 발성이다. 중요한 건 수용의 맥락이다. 예를 들어 <스탠리 큐브릭: 영화 속의 인생> 같은 다큐멘터리도 부천에서 틀면 관객에게 다르게 다가간다.

-올해의 빅 이슈인 호금전 회고전의 의의를 말한다면.

=아시아의 판타스틱영화제인 부천영화제가 아시아와 판타스틱이라는 두 화두를 결합하고 과거 영화를 복원 회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호금전만한 대상은 없다. 타이밍 면에서는 물론 <와호장룡>의 바람을 탔다. 부천에 오니 의외로 이런 보물이 있구나라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하겠다. 한국 로케이션 촬영한 호금전의 영화는 한국적 공간의 재해석도 보여줄 것이다. 전혀 예비지식이 없는 관객도 호금전 영화 속에서 불국사 단청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낄 거다. 이번 부천영화제의 숨은 테마는 인연이다. 제2대 페스티벌 레이디 추상미, 제2회 경쟁 장편 심사위원장 존 베리와의 인연이 특별 상영을 통해 부활하고, 국제영화제라면 의무사항이라 볼 수 있는 자국영화 회고전은 선배 세대와의 인연을 더듬는 자리다. 호금전 회고전도 그렇다. 김영덕 프로그래머의 추억도 <씨네21> 기사를 읽고 알았지만, 나 역시 중1 때 생전 처음 본 홍콩영화가 <방랑의 결투>였고 그것이 <대취협>임을 지난해에야 알았다. 그 이후 고등학교 갈 때까지 한국에 수입된 칼싸움영화는 다 봤다. 나약한 모범생이었던 나의 억눌린 폭력성을 만족시켜준 건지.(웃음) 실은 1회 때부터 감독 오마주를 호금전에게 바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무리라고 다들 말렸다. 호금전 회고전의 성사는 이제 부천영화제에 그만한 내공이 생겼다는 증거다.

-부천은 축제의 성격이 강한 영화제다. 영화가 아직은 공동체적 경험이라고 생각하는가.

=디지털이 부상하면서 영화를 제작하고 수용하는 방식은 점점 개인화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파는 쪽에서도 그걸 강조한다.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매체 민주주의라기보다 시장 확장의 의도다. 브뤼셀영화제를 가보니 그쪽 사람들은 디지털을 하나의 테크놀로지로서 관심을 가질 뿐 지각변동이 올 듯 요란을 떨지 않더라. 영화가 예술이자 산업으로서 영상산업의 종가 역할을 했던 시대가 가고 물적 토대가 바뀌면서 영화제의 역할도 달라진다. 영화제는 사회적 의의로 봐서도 도리어 아날로그로 가는 방향이 맞지 않나 싶다.

-그와 관련해 ‘메이드 인 코리아’ 섹션에서 인터넷영화를 굳이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뜻이 궁금하다.

=파편화된 맥락에서 소비되는 인터넷영화를 집단적 경험의 장인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셈이다. 영화는 복제물일지 몰라도 관람은 극장이 어디냐 관객이 누구냐에 따라 하나하나의 상영이 라이브 퍼포먼스다. 이제 35mm와 화질 구분이 안 되는 디지털영화가 프로젝터로 상영되는 시대가 오면, 영화제를 가야만 영사사고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영사사고, 그거 얼마나 재미있는 건지 모르지?”하면서 말이다. 즉 영화제가 영화의 고전들을 창작자가 의도하는 형태로 영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교회 제단화. 귀족 초상화가 맥락에서 떨어져나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박제화되어 나란히 걸려 있는 미술관과 달리, 영화제에서 필름을 튼다는 것은 그 영화가 태어나서 살았던 공간을 관객만 바꿔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다. 내가 있는 한 부천영화제는 아날로그의 전통을 이어가고 싶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단편 상영작을 동영상으로 미리 틀지말자고 했다. 앞서가는 ‘퇴행’이랄까.

-회고전의 한국영화는 젊은 관객에게는 오히려 이국적인 오락이 될 것 같다.

=영화 교육, 영화 수용에 단절이 없던 미국의 영화광이라면 고전 할리우드영화를 주말에 TV만 틀어도, 비디오 가게만 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미국에는 산업적 연속성, 유럽에는 문화적 연속성이 있는 반면 한국영화의 70, 80년대는 단절이다. 각국 영화제를 다녀봐도 ‘화합’이라는 갈등을 전제로 한 정치적 용어를 영화계에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래서 옛날 한국영화를 본다는 것은 한국영화로서는 자신의 옛모습을 보는 일인 동시에 낯선 일이다. 어찌 보면 타자의 영화이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외국영화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한국영화에 대해 국내외 관심이 고조된 지금이, 한국영화를 단순히 복고취향이나 호사가적 관심, 자기 비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로서 재발견, 재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1930년대 유니버설 호러나 해머 호러 같은 특수한 회고전을 부천에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기획이 좋아도 문제는 섭외다. 미라맥스가 호금전 영화 판권을 전부 사들이려 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모르긴 해도 아마 흩어져 있는 판권 소유자 수십명에게 팩스하다가 지쳤을 것이다. (웃음)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도 여러 영화제가 약속까지 받아놓았지만 워너가 올 스톱시켰다.

-해외 판타스틱영화제들과 프로그램 교류성과를 자평한다면

=판타스틱영화제는 비주류의 대안영화제들인 까닭에 우정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서로 친구가 되어 영화를 추천하고 섭외를 돕는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된 점이 중요하다. 부천영화제는 유럽판타지필름페스티벌연합의 준회원이고, 헬싱키를 필두로 판타스포르투, 브뤼셀, 판타아시아, 북미의 유일한 판타스틱영화제인 몬트리올에서 한국영화 스페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지금까지는 홍콩영화로 버텼는데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그들에게 한국영화가 대안이 될 거라고 말했다.

-여름에 열리는 부천영화제의 고충은 한국영화 프로그래밍이다. 이번 부천에 출품된 <나비>와 <소름>에 대한 소감은.

=영화가 그 영화제에 도움이 되느냐, 그리고 영화제가 그 영화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판단에 따르면 <나비>와 <소름>은 그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각각 경쟁작과 폐막작으로 상영되는 것이 각 영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진정성이 드러나는 영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요즈음 미덕이 있는 영화들이라고 영화를 오래 봐온 관객으로서 느꼈다.

-예산이 24억5천만원이다. 영화제 기간 시설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계획은 없나.

=부천의 문제는 영화 전용관이 아닌 공공 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영화관으로서 닦고 조이고 기름칠 수 없다는 점이다. 시설이 영화제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제 예산으로 교체할 수 없고 그렇다고 건물 운영주가 영화제를 위해 자기 예산을 투입하기도 어렵다. 올해는 스크린 교체, 영사기 보수, 렌즈 확보를 영화제 예산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공영 건물에서 영화제를 하는 장점도 있다. 타이베이영화제에 갔더니 직배사가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2∼3관에 세들어 행사를 치르는 모습이 딱했다. 멀티플렉스 때문에 관객의 기대치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를 볼 때 화질이 전부가 아니듯 시설이 다는 아니다.

-사무국이 연중 상설 운영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이나 영화제 노하우가 잘 축적되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을 것이다.

=운영 노하우의 매뉴얼화는 90%쯤 이루어졌다. 이제 문제는 시스템을 채워주는 인력을 어떻게 안고 가느냐다. 영화제 치르는 것만 일이라면 사무국은 프로그램팀을 제외하고 6개월 이상 일할 이유가 없다. 전문성을 생각하면 상설 조직이 필요하지만 단기간의 연례 행사를 치르는 효율을 생각하면 반대라는 데에 고민이 있다. 영화제 사무국이 영화제 행사뿐 아니라 영화제로 조직된 인프라와 인적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다른 사업을 통해 상시적으로 시민과 만나 지역 문화, 경제, 영상 문화 안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중이다. 예컨대 부천영화제가 꼬마 영화제와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래밍을 맡는다거나 부천 미디어센터 같은 기관을 통해 시민들에게 매체 교육을 실시하고 시민들이 영상 기자재를 사용해 매체 민주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게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영화제 스탭들의 개인적 전망이나 재원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별도 합의된 바는 없지만 집행위원장으로서 이러한 내용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신자유주의 원산지인 미국에서도 공적 서비스 기관의 성과는 이익의 폭이 아니라 기관의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인구를 끌어들였느냐로 평가된다.

-EBS <한국영화 걸작선>에 대한 애착은.

=기술적인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텔레비전에서 한국영화가 제대로 대접 못 받는 것은 제대로 포장이 안 됐기 때문이다. 자의적인 가위질이 분명한데 맥락에 대한 아무런 안내가 없고 엔딩 크레디트도 뜨기 전에 광고가 치고 들어온다. 이래서는 영화를 이미 알고 애정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하면 부정적 인식만 확산될 뿐이다. <한국영화 걸작선>의 진행 섭외를 거절못한 것은, 감히 말하건대 영화에 대한 존경을 갖고 필름을 원형대로 보여주는 것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유일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같은 경비로 텔레시네를 새로 뜨고 극장 협찬으로 촬영을 하고 원로 영화인들 인터뷰를 따는 데 모든 스탭이 인건비 개념없이 일하고 있다. 가끔은 레터박스로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내보내면 “왜 가려서 보여주냐”고 항의하는 어르신도 있다. (웃음) 이 프로그램의 예기치 못한 수확은 워낙 판권 섭외가 어려워 가능한 영화를 다 틀다보니 라이브러리가 완벽했다면 간과했을 영화 중에 보석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이번 부천영화제에서도 상영되는 <아! 백범 김구 선생>의 전창근 감독님 영화에서 대단한 진정성을 보았고, 임권택 감독님이 20대에 만든 영화, 유현목 감독님의 코미디를 보는 재미도 대단하다. 영화한다는 사람으로서 창피하지만 허장강이라는 배우가 세계 영화사를 통틀어 최고의 배우임을 재발견했고 김지미, 전계현 같은 옛날 여배우들의 매혹도 발견했다. <한국영화 걸작선>을 통해 영화인협회의 원로 영화인들이 당신들의 작업에 대해 몸담았던 한국영화의 시대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화상 같은 영화를 한번쯤 찍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의 자전적 이야기라기보다 내가 자란 시대가 제대로 대변된 걸 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였다. 무시험 고교 진학 세대로서는 전혀 모르는 1970년대 후반 일류 고등학교의 문화를 그려보고 싶다. 하도 엘리트 의식을 주입해서 축구를 해도, 놀아도, 예술제를 해도 꼭 일등하고 잘해야 하는 아이들에겐 참 재미있는 면이 있었다. 반마다 작은 예술가들이 있었고 나는 그런 애들을 동경하며 <종합영어> 대신 <한국회화 소사>를 학교에서 읽던 ‘딜레탕트’였는데, 문학상 휩쓸고 나팔 불던 친구들도 다들 의사가 되고 법관이 됐다. 동창회에 가면 나는 연예계 대표 인사 대접을 받는다. 아마 장르는 코믹멜로 판타지가 될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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