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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야 저리가라, 무협소년 나가신다!
2001-07-04

<화산고> 촬영현장

남부 지방에 장마가 시작됐다는 기상청 예보가 나온 지난 6월23일, 광주에서 세 시간 하고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의

한 폐교는 모처럼 북적거리고 있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의뭉스런 남학생들과 순둥이 같은 여학생들이 조잘거렸을 이 중학교 터를 점령한 것은

학원무협영화 <화산고> 제작진이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큰 집회라도 열리는 줄 알 정도로 타워에 매달린 커다란 붉은 천이 인상적인

이 장소를 포함, 이곳저곳을 돌며 영화 스탭은 벌써 10개월째 진땀을 쏟아내고 있다. 이날 촬영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조명 타워가 무너지는

장면. 세우는 데만 5일이 걸렸고 설치비만 해도 1천만원이 넘게 들어갔다는 시설이라지만 막상 쓰러지고 나면 ‘폐자재’에 불과한 탓에 제작진은

이틀 동안 정성들여 촬영준비에 임했단다. 하지만 ‘사건’은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에 벌어지는 법. 사진기자가 잠시 숨을 돌리는 틈에 “어-어-”

하는 소리가 나더니 타워가 기울기 시작했다. 보통 공사장에서 자그마한 벽을 무너뜨릴 때도 “하나 둘 셋” 카운트다운을 외치는데, 하물며 10미터짜리

조명탑을 쓰러뜨리는 데 별 소리 없으랴 하는 순진한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다음날 촬영분은 쓰러진 타워와 함께 땅 속에 묻힌 줄 알았던 주인공 경수(장혁)가 하늘로 서서히 떠오르는 장면. 피아노줄에 단단히 몸을 맨

장혁은 타워에 걸린 줄을 따라 위로 올라갔지만 어떨 때는 지미집 카메라와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어떤 경우엔 스모크 머신이 작동되지 않아서,

또 어떨 때는 그 자신이 너무 빨리 하늘로 치솟아, 수도 없이 ‘공중부양’을 해야 했다. 꽤 싸늘하게 느껴지는 장마비가 오는 와중에도 제작진은

살수기로 폭우를 만들어(그것도 지하수를 이용해!) 그에게 퍼부었지만 장혁은 특유의 건강미를 과시하듯 “시원한데요, 뭐”라며 입꼬리를 슬쩍 치켜올릴

뿐이었다. <박봉곤 가출사건> <키스할까요> 등을 만든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는 이번달이면 11개월의 강행군을 끝마치고

연말 개봉을 위해 분주히 후반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글 이혜정·문석 기자·사진 이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