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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깨지 말란 말이야
2001-06-07

눈 부릅뜨고 보면 정신이 퍼뜩 드는 <파인딩 포레스터>

스스로 유폐된 늙은 천재가 늘그막에 어린 천재를 만나 다시 꿈을 꾸고 작품을 쓰게 된다는 <파인딩 포레스터>를 보고온 날, 아줌마는 타이프라이터 자판 위를 날아다니는 영화 속 주인공의 손가락을 부러워하며, 걸레나 쥐어짜는 데 꼭 알맞은 자신의 무능한 손가락을 새삼 흘겨보았다.

비록 스물세살에 경천동지할 고전을 펴낸 윌리엄 포레스터 같은 천재 되기는 이미 물건너간 아줌마라 할지라도, 남 손가락질하는 데 한없이 재빠르고 자기 생각 그려내는 데 한없이 굼뜬 손가락을 원망할 자격은 있는 것이다. 스크린에다 꿈의 빛을 쏘아대는 영사기처럼, 지면에다 값진 지혜를 쏟아내야 할 두뇌는 아줌마 짐많은 어깨 위에서 어찌 그리 하는 일이 없단 말인가. 회색 뇌세포가 손가락에 어떤 교시도 내려주지 않는 채 무늬만 머리인 척하는 바람에, 마감날 <씨네21>을 만날 초상집으로 만들어놓는 게 아줌마의 실체다. 그러고서도 마치 영화 속에서처럼, 타임아웃 직전의 프리드로 투샷을 고의로 망친 농구천재인 척, 다 그럴 만하니까 그런 척, 허세를 부리고 살아왔던 거다.

그래, <파인딩 포레스터>의 열여섯살 천재소년 자말 보기 부끄러워서라도, 글 못쓰는 손모가지를 분질러 버려야지, 아줌마는 그렇게 수천번 결심했다. 주인의 손가락질을 한몸에 받고 자존심 상한 아줌마 손가락은, 그날 밤 자괴감에 밤새 활자 하나 두드리지 못하고 자살책 삼아 독약 같은 담배나 작살낼 뿐이었다. 아줌마 손가락이 언제 자판 위로부터 철수하는가 하는 시기문제는, 포레스터나 월러스 같은 천재작가의 재촉없이도, 미리 예정돼 있기는 했더랬다. 평소 영감 등짝이나 되는 듯이 북북 긁어댔던 신용카드 복권이 맞으면 자판쪽에서 더 있으라고 붙잡아도 당장 철수한다는 것이었는데,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제대로 된 손가락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본때 있게 보고난 뒤, 철수일정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는 얘기다. ‘똥물 같은 글’ 쓴다는 소리 듣는 주제에 이제는 돌아가 설거지통 안에 푹 잠긴 손가락이 되더라도 싸지 뭘.

그런 비장한 각오로 한자도 안 쓰고 새아침을 맞은 아줌마, <씨네21>이 걸어온 전화통으로 있는 볼기 없는 볼기 다 얻어맞고나서 지가 쓰네 못 쓰네 잘난 척할 계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가 천재 아닌 줄 언제는 몰랐나. 영화보고 와서 감상문 쓰랬지, 쓸데없이 천재 주인공하고 지하고 비교하면서 열등감 느끼고 오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그렇게라도 얘기해야 김영하씨가 말했던, 원고료를 타내 생활비에 보태려는 ‘가증스런 잔머리’를 들키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좌우당간 그날도 아이들 유치원비 버느라고 한숨도 자지 않은 상태로 주중 오후의 극장을 찾은 아줌마는, 앉아 있으면 알아서 잠깨워줄 <진주만>을 보고 싶다는 유혹을 애써 뿌리치고 뭐가 좀 있어보이는 <파인딩 포레스터> 표를 끊었다. 객석은 추울 정도로 텅 비어 있었는데, 시간대가 그래선지, 40년째 은둔생활하는 대작가 따위야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흑인배우들이 출렁거리는 반흑인영화여선지는 알 길 없었다. 언젠가 주워들었던, 우리나라에서는 흑인들이 나오는 책이나 영화는 전혀 장사가 안 된다는 얘기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뭘 좀 배우려는 자세로 보면 정신이 퍼뜩 들고, 잠 안 자고 가서 보면 진짜 졸린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는 아닌 게 아니라 꿈을 잊어버린 자들이여, 꿈꾸라고 옆구리를 찌른다. 말 그대로 ‘보이스, 비 앰비셔스’다. 그런데 경험칙으로, 꿈을 꿀 수 있는 건 자유가 아니라 능력인 것 같다. 꿈꾼다는 건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되는 기술인 것이다. 꿈을 꾼다는 건, 또 희생을 뜻하기도 한다. 꿈을 꾸는 사람은 꿈의 그늘에서 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알렉스 헤일리의 말처럼, 버릴 건 버려야 한다. 포레스터가 익숙해진 은둔생활을 버리고, 월러스가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위해 농구선수로서의 자부심을 버리듯이. 아줌마도 요즘 치열하게 꿈을 꾼다. 물론 대부분이 복권 맞는 개꿈이긴 하지만, 개중에 쓸 만한 꿈도 섞여 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는 것. 직장에 다니거나 방 안에 틀어박혀서 남이 주는 일거리 받아다가 시키는 대로 해주고 먹고사는 ‘브롱크스적 삶’을 벗어나는 것. 대작가는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 간단한 동작 하나로 세상과 다시 만나지만, 아줌마가 세상과 새로 접하는 방법은 십수년 직장사회의 ‘소모품’으로 길들여진 사고방식을 탈탈 벗어던지고 알정신이 되는 거다. 그러기 위해 아줌마가 버릴 것? 아직 잘은 모르지만, 그중의 하나는 아마 원고료를 타내 생활비에 보태려는 ‘가증스런 잔머리’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최보은/ 아줌마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