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리얼리즘의 복합적 실상
이탈리아영화들이 전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순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제는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영화사적 지식의 극히 일부분으로서만, 그렇게 고고학적인 가치로만 기억되던 네오 리얼리즘의 본질에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 출시된 이 루키노 비스콘티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로베트로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더불어 그들이 네오 리얼리즘과는 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맺었는가를 부가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함께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40년대 초기작 <강박관념>과 <흔들리는 대지>는 이 영화가 과연 네오 리얼리즘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비스콘티의 영화는 탐미주의의 극치에 불과한가, 혹은 사실주의인가, 자연주의인가, 혹은 연속된 아름다운 사진에 불과한가? 하지만 서플먼트로 들어간 다큐멘터리에서 그 자신이 비스콘티의 연출부이기도 했던 감독 카를로 리차니는 “비스콘티의 모순이 바로 네오 리얼리즘의 모순”이었다고 단언한다. 밀라노의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인 비스콘티는 연극과 음악, 문학에 대한 고귀한 취향과 더불어 하층민에 대한 천성적인 깊은 애정,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도덕적 가치관의 충돌 등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리차니는 바로 그런 혼합된 양상이야말로 네오 리얼리즘의 특성 자체였음을 설명한다. “서로 다른 경향과 가치관의 선택들이 어떻게 동일한 경향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다양한 모순들을 대담하고 정교하게, 조화롭게 배합하는 경향이야말로 네오 리얼리즘이기 때문에 ‘완전히 순수한’ 전례를 찾으려는 건 헛수고에 불과할 것이다. 현실이 복잡하기 때문에 그것이 투영되는 영화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새롭고 어리둥절한, 그리하여 수수께끼 같은 영화들. 비스콘티를 비롯하여 로베르토 로셀리니, 주세페 데 산티스 등의 감독들은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즘이 대중에게 끼친 영향에서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파시즘 특유의 수직성을 강조하는 저속한 숭고미 대신 수평미를 제시하며 전혀 새로운 인물들을 내세웠다. 주인공들은 얼마든지 패배하며(이전의 영화는 전쟁 영웅이거나 현실도피적인 즐거움을 안겨주는 모험가-로맨티스트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아이들은 어른의 선택을 그대로 떠안고, 남성 대신 여성들이 사회악에 맞서 싸운다. 스크린을 통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관객이나 정치인들의 반발도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의 하나된 힘을 믿었던 마르크시즘에서 비롯된 이 새로운 경향은 미학보다는 윤리적 문제를 고민하면서 영화의 지평을 순식간에 넓혀버린 것이다.
이순간 “성격과 운명이 계급투쟁의 중심문제를 전형적이면서도 올바르게 반영할 때 비로소 개인들간의 투쟁은 객관성과 진리성을 획득할 수 있다”라는 게오르그 루카치의 단언이 영화에 겹쳐 떠오른다. 개인적인 것과 전형적인 것의 조화로운 통일,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총체성이야말로 리얼리즘의 본질이자 예술의 본질이라고 믿었던 루카치의 믿음은 바로 네오 리얼리즘 시대에 가장 설득력 있는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지금, 포스트 모더니즘의 유행까지도 썰물처럼 빠져나간 진공의 시대에 오히려 이상한 울림을 내포하는 이 체험은 부인할 수 없이 감동적이다. 김용언 [email protected]
Great Directors Documentary of 20th Century Collection Vol.1 1999년/ 감독 카를로스 리차니/출연 루키노 비스콘티, 알랭 들롱 /장르 다큐멘터리/DVD 화면포맷 1.33:1/오디오 돌비디지털 2.0/출시사 알토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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