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성과를 넘어서, 대체 장르개발 투자 필요
8월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중국 베이징에서는 1차 국제TV프로그램마켓((China International Film and TV Programs Exhibition)이 열렸다. 지난 6월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여파로 ‘상하이페스티벌’이 취소된 뒤 아시아에서는 올해 첫 번째로 열린 가장 큰 견본시장이다. 이번 마켓은 중국 미디어산업을 좀더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이루어졌다. 6만m2의 베이징센터에는 아시아는 물론 아메리카, 유럽 등 15개국 이상 국가에서 200여개의 업체가 참여, 발디딜 틈이 없었다.
중국은 한류 열풍의 주무대이자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답게 역동적인 특별한 힘을 보여줬다. 그리고 한국 공동관은 여전히(?) 가장 인기있는 부스였다. 더욱 가열된 드라마 열기와 함께 가장 큰 성황을 이룬 곳이기도 하다. 특히 바이어들 사이에선 한국 스타에 대한 관심이 우리가 상상한 이상이었다. 무조건 한류 스타가 나오는 영상물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올인>이 올 3월 프랑스에서 열린 MIP TV에서 아시아 바이어들 사이의 최대 화제였다면 지금은 단연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에 대한 끊임없는 판권 경쟁이다. <여름향기>의 경우 한국에서는 <다모>와 <옥탑방 고양이>에 밀려 다소 주춤하였으나, 동남아 시장에서는 <올인>을 누르고 최고의 해외 수출가격을 기록했다. 한국 공동관에는 공중파 외에 한국케이블협회, 독립제작사협회가 참여하였지만 여전히 수출 강세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도출된다. 당장 3∼4년 뒤 한국의 다음 영상상품은 무엇인가, 를 살펴보았을 때 지금처럼 드라마 위주의 수출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인 것이다. 즉 드라마에 의존한 해외 수출로는 아시아 황색시장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드라마 장르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드라마 수출 가격상승도 질적 현상에 따른 현상이라기보다 2001년 대만의 ‘비디오 랜드- 위래(緯來)방송국’의 채널개국과 함께 불거진 경쟁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물론 일본 드라마 판권의 높은 가격도 한몫했다). 즉 비디오 랜드는 대만 GTV와의 전면전을 선포, 한국 드라마의 이른바 ‘줄 편성’이라는 걸 시도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국에서 방영이 끝나기도 전에 수입해가는 여러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따라서 이러한 수입업체간의 경쟁에 따른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단기적 현상에 그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은 우리가 아시아에서 거둔 드라마의 성과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대체 장르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때이다. 그리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상품’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본격적인 해외수출을 위한 대체상품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다. 현재 모든 TV 프로그램 견본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는 다큐멘터리다. < 동아TV >의 홍성아 PD는 “드라마 장르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의 수출비중이 10% 미만인 것은 시급히 수정돼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렇듯 새로운 부가가치를 위한 타 장르에 대한 제작도 강화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사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금의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또는 공중파에 납품하기 위한 한국 다큐멘터리로는 도저히 세계시장에 나갈 수가 없다는 거다. 이미 세계시장의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소재와 새로운 스타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기존의 딱딱한 성우 내레이션에 조잡한 편집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으며, ‘자연’이나 ‘풍물 다큐멘터리’ 등은 너무 흔해서 더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새로운 다큐멘터리가 필요한 이유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관련이라면 분명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작품도 가능할 것이다(실제로 서구권의 엔터테인먼트 다큐멘터리는 거의 프라임타임대 방영되고 있다).
그러나 타자후박(他者厚薄)이라 했던가. 이른바 ‘문화 사대주의’ 때문에 아직도 우리 것은 보잘것없다는 못된(?) 사고방식이 남아 있는 듯하다. 우리의 대중문화와 상품으로 세계시장에 나간다는 것에 여전히 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를 제외하고는 대중문화의 질이 압도적으로 높은 곳은 그리 없다. 우리도 충분한 승산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방송시장은 예전처럼 미국 영상물이 큰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시장에 부는 아시아의 바람도 우리에게 무시못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는 수출시장을 좀더 넓은 시장으로 확대, 전세계에 한류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반드시 요원한 일만은 아니다. 드라마의 성과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이 아시아 주도권을 잡은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