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에서 정초신 감독은 무슨 입시학원 강사 같다. 스탭들과 배우들을 매섭게 다그치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한손으로 콘티북을 들고 있는 포즈도 영락없다. “테스트 없이 그냥 가도 되지? 요령은 (설명한 것과) 같아. 슬레이트… 액션!” 7월10일, 크랭크업을 하루 앞두고 중국 지린성 옌지시 공상행정관리국 앞에서 도둑촬영을 하고 있던(중국 현지촬영 허가를 받았지만, 관청일 경우 외벽을 찍는다 하더라도 따로 신청서를 제출해 승낙을 얻어내야 한다) <남남북녀> 제작진은 몰려들어 조인성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는 군중을 제지해야 했던데다 출동한 공안(公安)들을 얼르느라 부산해 보였다. 오직, 하루 평균 60컷씩을 찍어낸다는 정초신 감독만이 촬영 도중 “취재진들이 귀국하기 전에 개봉할 계획”이라는 농담을 늘어놓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촬영차량 몇대로 나뉘어 옌지시를 휘젓고다니던 제작진이 해저물 무렵 도착한 곳은 옌볜대학. 촬영지인 팔각정에 오르는 동안 해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는지 정 감독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니들 이거 (오늘) 못 찍으면 큰일날 줄 알아”라며 큰소리를 낸다. 이날 촬영의 피날레는 남한의 정보기관 고위인사의 아들로 바람기를 잠재우지 못하는 김철수(조인성)와 북한 외교관의 딸로 콧대높기로 유명한 오영희(김사랑)가 서로의 연정을 확인하는 장면. 고구려 고분 발굴단에 참가해서 알게 된 이들 두 사람의 티격태격 자존심 싸움이 어느 샌가 러브 스토리로 전이되는 로맨틱코미디의 한 장면을 위해 정 감독은 후시녹음이지만 조인성에게 직접 하모니카 연주를 해보이며 카메라 거두기를 주저한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스토리 요약처럼, 영화는 남북 정보요원들이 이들 두 사람을 뒤따라 붙으면서 후반부에 가속도를 높일 예정. 배우들뿐 아니라 옌볜 촬영을 위해 중국 정부가 제시한 까다로운 요구를 적절히 눙치느라 제작진도 연신 취재진에게 ‘입조심’을 강조했다. “후시녹음을 현지에서 해야 한다”는 장춘제편창의 현실적인 요구와 달리 성(省) 정부가 “주인공들의 신분이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다”며 수정을 요구해와서 실제 촬영시엔 남쪽 대기업의 아들과 북쪽의 한 여대생의 사랑이라는 설정이라고 속였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선 촬영현장에 조선말을 알아듣는 스파이를 심어놓기도 하는 탓에 10일 동안의 짧은 일정이었는데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고. 튜브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며 개봉예정은 8월14일이다. 옌볜=사진 이혜정·글 이영진
♣ “련변 사람들이 추는 군중무용은 질서가 없구나야.” 특공무술에 가까운 댄스를 선보이는 영희. 김사랑은 영희가 쓰는 북한 사투리 구사를 위해 통일원을 드나들며 20대 북한 여성의 말투를 반복 청취했다고. ♣ 싸이의 <챔피언>에 맞춰 격렬한 몸짓을 선보이고 있는 정초신 감독(오른쪽). 그는 이날 현지 DJ와 함께 깜짝 출연했다.
♣ 요원들에게 쫓기다 잠시 몸을 숨긴 철수와 영희. 옌볜 시민들은 피멍이 든 분장을 한 조인성이 한숨 돌릴라치면 사인을 부탁하느라 정신없었다. ♣ 제작진이 그치지 않는 옌볜 시내의 경적 소리를 피해 건너편의 철수와 영희를 포커스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