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아아~.” 신나는 노래방 반주에 맞춰 이나영의 노래소리가 울려퍼진다.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더니, 이나영은 이내 얼굴 근육에 힘을 잔뜩 불어넣으며 나름의(!) 브레이크댄스를 춘다. 수십명의 배우들과 보조연기자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지만, 스탭과 취재진의 시선은 오로지 이나영의 ‘망가진’ 모습만을 좇았다. 잠시 뒤 감독의 컷사인이 나자, 이들은 꾹 누르고 있던 폭소를 일제히 터뜨렸다.
지난 6월29일 김성수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영어완전정복>의 촬영이 이뤄진 곳은 경북 예천군 용문면의 한 농가. 문수(장혁) 등 영어학원 수강생들이 영주(이나영)의 외가를 찾아 잔치를 벌이는 밤신을 찍고 있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이나영의 <달타령> 장면. 서서히 호흡을 고르며 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와중,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오전 8시부터 촬영에 임했던 이나영에게 갑작스런 알레르기 증상이 생긴 것. 목 주위에서 시작된 붓기가 얼굴로 번지며 촬영이 어려워졌다. 장마철이라 비오지 않는 날 제대로 촬영을 못하면 제작일정이 하염없이 늦춰질 수 있는 탓에, 김성수 감독의 얼굴에 장마전선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다른 장면을 찍으며 이나영의 상태를 기다리던 제작진이 쾌재를 부른 것은 새벽 3시 무렵.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진 이나영이 다시 촬영장에 나왔다. 촬영이 시작되자 그녀는 언제 아팠냐는 듯, 쌩쌩한 모습으로 다양한 ‘댄스’를 선보이며 스탭들을 즐겁게 했다. 7번째 테이크만에 결국 감독의 입에서 ‘오케이’라는, 만인이 갈망했던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날이 밝기 전에 밤장면을 마무리한 것이다. 새벽 5시, 어둠에 가려져 있던 조용한 마을 모습이 안개 속에 드러나는 신비로운 광경을 뒤로 하고 스탭과 배우들은 잠자리를 찾아갔다. ‘깡다구’ 하나로 버티던 이나영도 코디네이터에게 몸을 기댄 채 자동차로 향했다. “아깝다… 연습한 것에 비하면 춤은 절반도 못 보여줬는데….”예천=사진 손홍주·글 문석
♣ “두 병만 더!” 영주 외할아버지 역을 맡은 김인문이 외친다. 얼떨결에 문수 역의 장혁도 따라한다. 김인문은 바람둥이 문수를 짝사랑하는 외손녀를 위해 연신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영주를 ‘폭탄’으로만 생각하던 문수 또한 서서히 영주의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 “김성수 감독님 말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달타령> 편곡을 위해 촬영장을 찾은 조성우 음악감독(뒤편 왼쪽)은 김성수 감독의 지시에 제깍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촬영 중 그는 열심히 춤을 안 춘다며 감독에게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 불같은 성격으로 촬영장에서 욕설을 서슴지 않았던 김성수 감독은 “이번만큼은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미디영화답게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좋은 장면이 나올 거라는 판단 때문이란다. 이날도 “조감독 튀어나와, 이 섀꺄”라는 정도의 가벼운(?) 욕설만을 했을 뿐이었다. 김성수 감독의 오랜 파트너 김형구 촬영감독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인지라 게슴츠레한 눈으로 촬영장을 응시했다.♣ 동사무소의 말단 직원인 영주는 나사 하나가 풀린 듯 맹한 성격의 소유자. 이나영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양갈래 머리와 꺼벙한 안경을 동원했지만, 신비스런 매력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이나영은 이날의 연기를 위해 노래방에서 <달타령>을 100번쯤 부르며 ‘특별훈련’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