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좀처럼 앉아 있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불어라 봄바람>의 촬영이 막바지에 이른 6월16일, 전북 남원의 한 성당에서 만난 그는 소품 담당 스탭과 함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극중에서 쓰레기 무단투기가 특기인 소설가 선국(김승우)의 배낭을 빵빵하게 채워줄 양식(?)을 직접 고르고 있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성당 앞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다 전직이 의심스러운 험악한 신부(성지루)에게 걸려 선국이 도망가는 장면을 찍는 동안 장 감독은 짬이 나면 노련한 피에로처럼 김승우에게 디테일한 표정 연기와 동선을 일일이 실연해 보인다. “얼굴이 조금만 받쳐줬으면 배우로도 대성했을 텐데”라는 이관수 프로듀서의 농담을 뒤로 하고 왜소한 체구의 장 감독은 연기 삼매경에 취해 있다.
<불어라 봄바람>은 가진 거라곤 작업실밖에 없는 꽁생원 소설가 선국의 집에 어느 날 물망초 다방 영업부장으로 화류계에서 이름 높은 화정(김정은)이 찾아오면서부터 아옹다옹이 시작되는 코미디영화. 전세계약을 이미 끝냈다며 방을 내놓으라 으름장을 놓는 화정과 이로 인해 어물쩍 자신의 2층 작업실을 뺏긴 선국은 그날부터 이상한 동거에 들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1층과 2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동안 두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장막도 서서히 걷힌다는 이야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연상하면 얼개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라는 장 감독은 “전작 <라이터를 켜라>가 상황극이라면 이번 영화는 철저하게 캐릭터코미디”라고 소개한다. 이날 촬영 분량이 없던 김정은은 울긋불긋 요란한 의상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다. “실제 촬영 때 입고 다니던 옷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라고. 6월20일 크랭크업한 <불어라 봄바람>은 여름 성수기가 막을 내리기 시작하는 9월5일 극장가에 훈풍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사진 정진환·글 이영진
쓰레기 무단투기가 특기인 소설가 선국(김승우)는 성당앞에 쓰레기를 버리다 깡패같은 신부(성지루)에게 발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