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했던 역사 속으로“충무로가 여기 이사를 왔네 그려.” 실미도로 가는 페리호 안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100명 넘는 취재진에 제작자, 투자자, 감독, 스탭, 배우를 합쳐 300명 넘는 인원이 모였으니 이런 말이 나와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 4월30일, 충무로 시네마서비스 사무실 앞에서 출발한 관광버스 6대는 인천공항을 지나 잠진항에 도착했다. 평소 무의도행 페리호가 출발하는 항구인 이곳은 이날 하루만 실미도행 페리호를 운항했는데 배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니 강우석 감독의 ‘파워’가 새삼 느껴진다. 시네마서비스와 관련있는 영화인 가운데 이날 제작고사에 불참한 인물은 거의 없을 듯하다. 일간지, 주간지, TV 연예프로그램을 망라한 취재진 역시 강우석 감독의 새 영화를 지나칠 수 없었으리라. 20여분 배를 타고 실미도 세트장에 내린 취재진은 감독과 설경구, 안성기 등 배우를 보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고 질문공세를 시작했다.
♣ 이웃한 섬 무의도와 개펄로 연결돼 있지만 하루 2시간만 물이 빠져 건너다닐 수 있다는 실미도는 오랫동안 무인도였다. 연초록 봄의 숲에 둘러싸인, 30여년 전의 비극을 상기시킬 어떤 흔적도 없는 평화로운 섬에 <실미도> 부대 세트가 세워졌다.(메인사진 위)♣ <실미도>는 남자영화다. 북파공작부대를 교육하는 군인과 훈련받는 군인들의 이야기로 온전히 채워진다.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지옥훈련을 함께해야할 출연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현장은 영화를 찍는 모습을 공개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촬영에 앞서 고사를 지내고 감독, 배우가 모여 간단한 기자회견을 가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동안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세트장과 군복을 입은 배우들은 충분한 볼거리가 됐다. 배가 섬에 가까이 가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부대 막사 세트는 제작진이 1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날 실미도 사건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 참석차 이곳에 도착한 북파공작 특수부대 생존자들은 몇몇 고증이 잘못됐음을 지적했지만 돈과 정성을 많이 들인 세트임은 분명하다. 세트를 돌아보고나자 간략한 추모제와 제작고사가 진행되고 이어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공공의 적> 이후 지난 1년간 <실미도> 준비작업에 매달렸던 강우석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공공의 적> 찍고 더이상 감독을 그만할까, 생각도 했는데 <실미도>는 오래 전부터 내가 만들면 잘 만들 텐데, 했던 작품이라 시작했다. 준비과정에서 내가 왜 한다고 했지, 후회도 여러 번 했지만 감독으로서 마무리한다는 느낌으로 해볼 생각이다.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고 잘 만들 거 같은 자신감도 있다.” 부담감을 갖는 건 배우도 마찬가지인 듯 주연을 맡은 설경구 역시 “마음이 굉장히 무겁다”는 소감을 밝혔다. 제작진은 실미도 옆 무의도에서 숙식을 하며 5, 6월 두달간 전체 영화의 80%에 달하는 훈련장면을 찍을 예정이다. 9월에 모든 촬영을 마치고 내년 설쯤 개봉할 계획.사진 손홍주 · 글 남동철
♣ 제작고사를 지내며 술잔을 올리는 안성기. 실미도의 한맺힌 영혼들에 보살핌을 기원하는 의미도 들어 있을 것이다.♣ ‘멋있게 싸우고 값있게 죽자’는 슬로건이 살벌한 분위기를 만드는 세트장. 세트제작에만 3개월이 걸렸다고.
♣ 강우석 감독은 “전체적으로 사실적인 느낌이 나겠지만 에피소드는 실화와 다를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들이 왜 희생됐나”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페리호를 타고 실미도에 도착한 취재진과 관계자들. 300명 넘는 인원이 참가한 제작고사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