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연약한 존재는 이성의 고삐에서 풀린 감정을 통제하기에 너무 무능한 것 같다. 런던의 한 연구기관에서 우연히 빠져나온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영국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은 이 기생체는 영장류만을 숙주 삼는, 일명 ‘분노 바이러스’라 불리는 병원균이다. 감염 증상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휘두르는 무서운 공격성. 내출혈로 붉어진 두눈을 부릅뜬 감염자들이 죽일 듯 서로를 공격할 때, 이 파괴적인 바이러스는 상대방이 흘린, 온기도 채 식지 않은 피를 타고 전염된다. 이제 영국은 오래 전부터 인류가 상상해온 먼 미래의 지구처럼 황폐하게 버려진 땅으로 변한다. 그로부터 28일 뒤, 시공간의 제약과 무관해 보이는 이 바이러스의 파급력을 두려워하며 더이상의 피해를 막고 스스로도 살기 위해 일군의 생존자들이 항체를 구하러 나선다. 어쩌면 짧게 끝나버릴지도 모를 위험한 여정이, 그렇게 시작된다.
<쉘로우 그레이브> <트레인스포팅> <비치> 등을 만들었던 대니 보일 감독의 신작 는, 한 사회를 함몰케 하는 강렬한 공포에 관한 색다른 이야기다. 모두가 떠난 도시의 공허하고 묵시록적인 풍경, 안구의 내출혈뿐 아니라 심리적 출혈로 일그러진 감염자들의 모습, 그리고 좀비 같은 이들의 괴물적인 움직임까지, 대니 보일 감독은 비주얼에 유독 정성을 쏟았다. 새벽 도로 위에서 런던의 황량한 공기를 포착했고, 디지털 방식의 촬영으로 민첩한 좀비들의 동선을 뒤쫓았다. 현대사회가 가진 사회적 분노를 적나라하게 그리고자 한 . 동시대적이면서도 굉장히 낯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분노가 야기하는 공포에 말려든 런던의 두려운 침묵은 이십세기 폭스의 배급망을 타고 8월 중 도착한다.박혜명
♣ ‘분노 바이러스’의 감염자는 끝도 없이 밀려나오는 분노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다. 이 끔찍한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왼쪽).♣ 실질적인 대안이 없어 막막해하던 생존자들과 연락이 닿아 합류한 군인들은, 자신들이 바이러스를 이길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오른쪽).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므로, 앞으로도 살아남아야만 한다고 마음먹은 생존자들. 그러나 도시에 깔린 어둠은 더욱 무겁게 내려앉고, 좀더 안전한 곳을 찾아 근교를 뒤적이려는 이들의 걸음도 함께 내려앉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