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추위가 무섭다 해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2월10일, 서울은 제법 봄 기운에 물들어가건만 첩첩 둘러싼 산봉우리에 하얀 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강원도의 봄은 아직 멀게만 보였다. 방한복으로 무장하고 틈틈이 커피로 몸을 녹이며, 촬영현장을 기웃거리는 기자들에겐 그 침묵과 추위의 고문도 기껏해야 한나절일 뿐이다. 김민종, 김정은, 김현성 감독을 비롯한 <나비> 팀은 벌써 한달째 강원도의 추위와 씨름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빠, 가지 마. 가지 마…. 꼭 돌아와야 돼.” “나, 폼나게 돌아온다. 기다려. 딱 1년이야.”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김민종, 그뒤를 따라붙으며 김정은이 울먹인다. <나비>의 순박한 연인 민재(김민종)와 혜미(김정은)는 아직 그들 앞에 펼쳐질 비극적인 운명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민재는 성공하겠다는 야망으로, 혜미는 사랑하는 남자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상경하지만, 삼류 깡패와 군 고위간부의 여자로 다시 만나게 된다. 원망도 후회도 잠시.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지만, 민재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고 만다.
무거운 영화? 배우도 감독도 “아니”라고 도리질한다. “처음엔, 나한테 준 시나리오 맞나, 싶었어요.” 최근까지 ‘코미디의 여왕’으로 불리던 김정은은 무거운 역사를 배경으로 한 <나비>의 출연 결정이 쉽진 않았던 듯. 그러나 캐릭터가 귀엽고 코믹한 측면도 있어, 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삼청교육대를 재조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80년대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김민종의 소개. 김현성 감독도 “웃다가, 허무하게 눈물이 흐르는, 슬픈 코미디”라고 정리한다. 액션과 멜로, 코미디의 요소가 두루 결합된 <나비>는 오는 3월 초에 촬영을 마치고, 5월 초에 개봉할 예정이다. 정선=사진 이혜정·글 박은영
♣ 혜미는 연인 민재를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다. 기차역에서 승강이를 벌이는 두 사람. 그들은 사랑의 기억과 함께 ’나비’ 문신을 나눠 가졌다.♣ <나비>로 데뷔하는 김현성 감독은 AFI에서 촬영을 전공했고, <흑수선> <가문의 영광>의 비주얼 디렉터로 일했다. 촬영 전 과정을 ‘투-카메라-시스템’으로 이끌어, 풍부하고 세련된 영상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혹한의 날씨에 맨몸으로 물벼락을 맞는 등 삼청교육대 분량을 힘들게 소화한 김민종. 오랜 흥행부진으로 새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지만, “새로운 각오로 임했다”는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변신해야겠다는 부담은 없어요.” 순진한 산골소녀에서, 요정의 접대부로, 군 고위간부의 여자로, 극에서 극으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역할이지만, 김정은은 특별한 부담이나 고충은 없다고 씩씩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