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코네티컷 상류사회. 완벽한 백인 주부 캐시 휘태커는 남편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순간, 자신이 지어올린 유리의 성에 금이 가는 불길한 소리를 듣는다. 캐시는 오려붙인 듯한 미소의 가면을 쓰고 꺾이는 허리를 지탱하려 애쓰지만 비탈길은 점점 가팔라질 뿐이다. 은밀한 고통에 신음하던 캐시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흑인 정원사 레이먼드에게 위안을 얻는 동안 차츰 자발적인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추문의 냄새는 보수적인 코네티컷 사회를 격앙시킨다.
뉴퀴어시네마의 기린아 토드 헤인즈가 고전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장인 더글러스 서크를 빌려온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영화를 기대할 것인가. 패러디 오마주 그러나 <파 프롬 헤븐>은 서크의 멜로드라마를 인용하지도 비틀지도 않는다. 그저 테크니컬러의 단아한 수면 아래로 격정이 복류하는 그 우아하고 장엄한 세계로 아무 유보조항 없이 투신한다. 제목부터 서크의 <천국이 허락하는 모든 것>의 반향인 <파 프롬 헤븐>은 크레딧의 글씨체부터 줄리언 무어의 라나 터너식 헤어스타일까지 1940, 50년대 여성 관객의 손수건을 적셨던 멜로드라마 그대로다. 다만, 토드 헤인즈는 이 오래된 진지한 러브스토리의 형식에 현재를 사는 자신이 아는 진지한 러브스토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고전기 할리우드영화에서 침묵과 암시로 은폐됐던 섹슈얼리티와 인종의 갈등을 소리내어 말한다. “<파 프롬 헤븐>은 위대한 멜로드라마에 대한 나의 사랑에서 나왔다.” 토드 헤인즈의 고백처럼 <파 프롬 헤븐>은 지극한 증오가 아닌 지극한 애정이 낳은 영화적 보복이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