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사이트 게시판에 어떤 분이 <천상의 피조물>이 곧 출시된다는 메시지를 남겨놓으셨더군요. 아직 확인은 안했지만 사실이길 바랍니다. 그래야 네번 중 세번은 출시작을 다룬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거든요.
피터 잭슨의 이 고약하기 짝이 없는 틴에이저 로맨스+호러+판타지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모델이 되는 리퍼/흄 살인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소녀가 자기네들을 갈라놓으려는 한 소녀의 엄마를 스타킹으로 싼 벽돌조각으로 때려죽인 사건이었죠.
전 우연히도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 사건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치콕의 <로프>의 바탕이 됐다는 레오폴드/로엡 사건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이 사건에 대해 읽은 적 있죠. 자료가 너무 짧아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나요. 레오폴드/로엡 사건보다 훨씬 극적으로 느껴졌으니까요. 제가 조금 노력했었다면 이 사건에 대한 책들을 구입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시만 해도 인터넷 같은 게 없어서 외국어 서적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게 꽤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잭슨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알고 얼마나 신이 났었던지요.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 영화는 동성애와 미성년자 성행위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수입금지되어서 사람 맥을 빼놓았답니다.
영화가 개봉된 뒤부터 셀스루 비디오로 출시되어 제가 그 영화를 구입할 때까지 그 빈틈을 채워준 것은 바로 인터넷이었습니다. 영화는 미국에서 흥행에 실패했지만 소수의 열성팬들이 태어나 인터넷에 팬사이트들을 만들었고 그중 작은 커뮤니티가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가치를 제가 처음으로 인식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이처럼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없었지요. 인터넷이 없었다면 전세계에 퍼진 이 영화의 열성팬들이 그처럼 조직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당시 이들이 만들었던 <천상의 피조물>의 FAQ를 보았을 때 얼마나 억울했던지. 만약 인터넷과 <천상의 피조물>이 조금만 더 빨리 나왔더라면, 남들이 다 긁어가 이제 남은 것도 없는 레오폴드/로엡 사건을 파며 시간낭비를 해대는 대신 리퍼/흄 살인사건을 택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를 흥분시켰던 것은 인터넷에 생긴 이 가상공간의 커뮤니티였습니다. 아, 물론 전 이전에도 통신망을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처럼 강한 소속감을 느낀 적은 없었답니다. 이 영화에서 데뷔한 케이트 윈슬럿이나 멜라니 린스키 같은 배우들이 서서히 상승세를 탈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들도 이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을 겁니다. 영화가 나온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전 제가 스캔한 윈슬럿 사진들이 인터넷 이곳저곳에 돌아다니고 있는 걸 보면 괜히 흐뭇해지며 멜라니 린스키가 할리우드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걸 보면 화가 납니다. 이제 이런 인터넷의 컬트 열풍은 꽤 흔한 것이 되었고 결코 한 군데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저 역시 이곳저곳에 달라붙으며 돌아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천상의 피조물>에 대한 기억은 머릿속에 대못처럼 박혀 있습니다. 결국 이 역시 어떻게 보면 첫사랑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