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강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궂은 날씨. 시력을 잃어가는 여류 사진가 소정이 경비행기를 타고 강 위를 난다. 잠시 암전…. 그 사이 비행기는 강물 속으로 추락했고 경비행기의 망가진 날개 위로 소정이 어렵사리 올라온다.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는 찬 빗줄기가 쏟아져 더이상 젖을 곳 없는 소정의 몸을 속속들이 적신다.
망막색소병성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실명이 예정된 한 젊은 여류 사진가의 깊은 슬픔을 그려내는 영화, <미소>의 마지막 장면 촬영이 지난해 12월13일 북한강 줄기에 인접한 경기도 여주 경비행장에서 있었다. 소정 역의 추상미가 물에 빠진 경비행기 날개 위에 올라와 몸을 추스리는 장면. 비가 갠 뒤 소정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진짜’ 마지막 장면인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본 이야기에서는 마지막에 해당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미소>는 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임순례 감독의 단편 <우중산책>과 장편 <세 친구>의 조감독을 거친 박경희 감독의 데뷔작. 임순례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추상미가 여주인공인 사진가 소정으로, <꽃섬>의 송일곤 감독이 소정의 연인인 지석으로, 그리고 <화산고>에서 학원 오인방 중 한명으로 출연했던 조성하가 경비행장 비행강사로 출연한다.
영화는 주인공 소정의 쓸쓸한 행로를 따라간다. 병을 진단받고 연인 지석(송일곤)에게 이별을 고한 뒤 촬영여행을 떠나는 소정(추상미). 그녀는 황량한 경비행장에 짐을 푼다. 할머니의 장례식장과 증조부의 묘, 그리고 경주의 고분 속을 지나 도착한 그곳에서 소정은 무뚝뚝한 비행강사를 만나고 그와 정사를 벌인다. 경비행기의 비상, 물 속으로의 추락, 그리고 물 위로의 회생은, 그러던 어느 날 마치 실명처럼 소정에게 닥쳐온다. 그리고 그 끝에, 비로소 소정의 얼굴 위에는 영화의 화두이기도 한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삶의 불가해함과 그 속에 함몰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에 차용된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삶의 부조리함과 고통에 관해 깊이 통찰하고 거기서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떠오르는 미소를 의미한다. 주인공이 강에 추락한 비행기의 한쪽 날개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하듯이 사람들이 삶에서 의지하는 것은 오히려 한 조각의 꿈이다. 이 영화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깊은 통찰로 화엄의 세계에 이르고자 하는 간절함과 이를 수 없는 실존의 슬픔에서…”라고, 박경희 감독은 연출의 변을 밝혔다. <미소>는 지난해 12월16일 모든 촬영을 마쳤고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사진 손홍주·글 최수임
(왼쪽부터 차례로)♣ `<미소>는 불안과 고통 속에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의 행로를 통해, 우연과 운명의 알 수 없는 삶의 불가해함 그리고 자기의식의 한계에 빠진 인간의 어리석음을 담아내려한다`는 박경희 감독은 현장을 속삭이듯 지휘한다.♣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모든 분야의 막내스탭처럼 현장 구서구석을 누빈다.♣ 간간이 내리는 비에 만족을 못한 스탭들은 살수차를 동원해 완벽한 인공비를 만들고서야 말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