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1972년작 <솔라리스>는 느리고 진중하며 철학적인 SF영화였다. SF영화라고 하지만 우주정거장이 무대라는 사실 외에 시선을 끌 만한 미래의 이미지가 없는 이 영화는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깊이있는 질문으로 그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태생부터 <니키타>나 <링>처럼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눈독을 들일 리메이크 프로젝트가 아님이 확연하지만 2002년작 <솔라리스>는 할리우드의 두 기린아, 제임스 카메론과 스티븐 소더버그가 합심해서 만들어냈다. 미국에서 지난해 11월 개봉한 이 영화는 상영시간 2시간30분인 타르코프스키의 원작을 96분에 간추려냈다. 감독 소더버그는 폴란드 작가 스타니슬라브 램의 원작소설을 직접 각색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깃든 철학적 질문을 되살리면서도 자신의 색채를 잃지 않았다는 게 미국 평단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소더버그판 <솔라리스>는 타르코프스키의 경건한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똑같은 이야기이다. 그것은 영화에서 매우 보기 드문 감정인 아이러니한 회한을 불러일으킨다”고 썼고 의 케네스 튜란은 “카멜레온처럼 모든 장르에서 솜씨를 발휘하는 감독 소더버그의 입지를 확고히 한 작품”이라고 칭찬했다.
이야기는 조지 클루니가 연기하는 심리학자 크리스 켈빈이 솔라리스라는 행성을 도는 우주정거장에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알 수 없는 사고로 2명의 생존자만 남은 우주정거장에서 켈빈은 믿기 힘든 일을 경험한다. 그곳에서 자고 일어난 다음날, 자신의 옆에 죽은 아내가 멀쩡히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정말 자살한 아내의 부활인가 아니면 행성의 마력이 불러온 환영인가 켈빈의 혼란은 놀라운 액션도 특수효과도 없는 정적인 SF영화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영화는 차츰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사를 시작한다.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