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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표지와 삽화를 그린 메리 그랑프레
2002-12-18

깜찍한 마법사의 탄생

일반적으로 ‘마법사’ 하면 높은 고깔모자를 쓰고 길다란 흰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가 두툼한 수도사 복장 비슷한 것을 입고 있는 이미지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얼마전 세살짜리 아들녀석과 함께 <환타지아 2000> DVD의 <마법사의 도제> 편을 보다가, 그 속에 등장하는 마법사는 물론이고 도제로 등장하는 미키 마우스마저 그런 이미지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새삼 놀라기도 했다. 바로 그런 마법사의 이미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판타지소설의 원조 <반지의 제왕>의 삽화에서부터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힐데브란트 형제, 알란 리 등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삽화 속 간달프의 모습이 그뒤 만들어진 수많은 판타지소설, 만화, 영화, TV드라마, 게임 등에 차용되면서 정형화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지의 제왕>이 마법사를 비롯한 판타지 세계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는, 과장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리 포터>의 등장 이후, 마법사의 이미지에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물론 <해리 포터>에도 덤불도어 교장과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의 마법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은 여려 보이고 순해 보이는 주인공 해리 포터의 이미지가 새로운 마법사의 전형으로 급부상한 것. 중요한 것은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 작가 조앤 롤링의 공이라고만 하기에는 어렵다는 점이다. 화려한 파스텔톤의 표지와 흑백의 삽화를 그린 매리 그랑프레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없었다면, 그런 이미지가 나왔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리 포터>의 원작자 조앤 롤링만큼은 아니지만, 매리 그랑프레도 역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팬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원작자 조앤 롤링이 영국 출신인데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 역시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고 그 내용마저 영국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매리 그랑프레는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해리 포터>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뒤, 특히 미국의 팬들과 언론들은 매리 그랑프레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해리 포터>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그녀의 사인회장에 늘어선 어린 팬들의 기다란 줄은, 그녀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드러내는 척도. 그러나 그렇게 대중들로부터 환호를 받기 이전의 그녀는, 코언 형제의 영화 <파고>의 무대이자 미국 속의 북유럽이라고 불리는 미네소타주에 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토박이 예술가에 불과했다.

5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백과사전에 있는 삽화 위에 트레이싱 용지를 대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평생을 예술가로 살아가는 데 대해 확신이 없었던 그녀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역시 미네소타에 있는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자신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녀는, 파스텔을 이용한 부드러운 필치를 가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호평받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만의 스타일은 ‘소프트 지오메트리'라고 불렸는데, 주로 광고회사와 단행본을 발행하는 출판사들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세계적인 광고회사인 오길비&마더나 BBD&O, 세계적 출판사인 랜덤하우스, 펭귄, 맥그로 힐 등이 그 예들. 특히 그녀의 작업은 어린이와 관계된 경우 더 큰 빛을 발했는데, 그녀 스스로도 “많은 시간 동안, 크고 간략한 그림을, 따뜻하게 그릴 수 있어”선호했다.

이처럼 높은 명성에 힘입어, 매리 그랑프레는 당시 영국에서 이미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던 <해리 포터>의 컬러표지와 흑백삽화를 의뢰받았다. 그녀는 출판사에 기꺼이 세장의 표지를 그려서 보여주었고, 출판사와 조앤 롤링이 선정한 하나가 바로 해리 포터의 이미지를 고착시킨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표지가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해리 포터>를 전후해 그녀가 극장용 애니메이션 작업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개미>와 <아이스 에이지>가 그 작품들. 우선 <개미>에서는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살린 배경들을 만들어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 자신이 “배경이 컴퓨터그래픽과 합성되어 스크린에 나왔을 때 흥분되었다”고 회상을 했음에도, 그뒤로는 컴퓨터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손을 사용하는 그녀의 작업 스타일은 캐릭터 설정작업에 참여한 <아이스 에이지>의 주인공들이 풍기는 따스한 느낌을 통해 빛을 발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렇게 출판, 광고는 물론 애니메이션에서까지 세계 최고의 명성을 쌓은 그녀의 이후 행보가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된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미네소타의 작은 마을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약혼자와 애견들에 둘러싸여, 출판과 광고에 관련된 창작 활동에만 몰두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7권까지 나올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 <해리 포터> 작업 이외에는, 전혀 자신의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많은 팬들은, <해리 포터>를 넘어서 좀더 대중적인 창착물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중이다.

그녀와 어렵사리 인터뷰를 한 팬사이트들이 공통적으로 또 다른 애니메이션에 대한 그녀의 참여 가능성을 물어보는 것도 같은 맥락. 살아 움직이는 그녀의 그림체를 보고 싶어하는 팬들의 요청에 매리 그랑프레가 어떤 행보로 화답해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매리 그랑프레 공식 홈페이지: http://www.marygrandpre.com

매리 그랑프레 팬페이지: http://www.marygrandpr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