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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관을 타고 흐르는 한,<검은 물 밑에서>
2002-12-04

<검은 물 밑에서>는 감독과 작가의 이름만으로 이미 섬뜩한 분위기를 전하는 영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깊이도 알 수 없는 부패한 ‘검은 물’. 수도관을 타고 흐르는 이 한(恨)의 영화는 <링> 시리즈에서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입증했던 나카다 히데오와 스즈키 고지가 다시 만난 결과물이다. 나카다 히데오는 도쿄만을 중심으로 물과 얽힌 괴담을 들려주는 스즈키 고지의 소설집 <어두컴컴한 물밑에서> 중 특이하게도 아파트 물탱크를 소재로 삼은 담은 <부유하는 물>을 선택했다. 원작은 끝내 공포의 근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끈적하게 말라붙은 물자국만을 남겼지만, 감독은 거기에 바닥처럼 깊은 슬픔을 깔고 있는 원혼을 덧붙였다.

얼마 전에 남편과 이혼한 요시미는 어린 딸 이쿠코와 함께 낡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상처를 갖고 있는 요시미는 딸에게만은 어두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 하지만,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은 요시미를 불안하게 만든다. 자꾸만 커지는 천장의 물자국, 버려도 버려도 다시 모녀 곁으로 돌아오는 주인 없는 빨간 가방, 몇년 전 실종됐다는 위층 소녀의 그림자. 요시미는 누군가 자신을 향해 차가운 손을 내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나카다 히데오는 푸른빛에 가까운 동양적인 공포를 창조하는 장인이다. <검은 물 밑에서>는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덮여 있는 수작. 버림받은 아이들의 고독과 영원한 감금까지도 받아들이는 모정이 마음 아픈 영화이기도 하다.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