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쏟아지는 골목길, 준하(조승우)가 가로등 불빛을 깜박이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전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자기들만의 신호를 정한 60년대의 어린 연인들. 한여름 소나기 속에서 동화처럼 만났던 준하와 주희(손예진)는 이제 통속극처럼 쓰디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연출하는 <클래식>은 60년대와 90년대의 두 가지 사랑 이야기를, 30년 세월을 관통하는 질긴 인연의 실로 엮어내는 멜로영화. 30년 전 엄마가 받은 연애편지를 발견한 딸이 그 안에서 자신의 사랑과 닮은 부분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손예진이 엄마와 딸로 1인2역을 맡으며, 조승우와 조인성이 각각 60년대와 90년대 손예진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곽재용 감독은 “요즘 세대는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진다. 그들에게 예전에는 이렇게 순수한 사랑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는 말로 <클래식>을 설명했다.
준하가 떠나기로 마음먹은 주희를 찾아온 이날 촬영은 보기 드물게 흙으로 다져진 골목이 남아 있는 목포 북교동에서 진행됐다. 나무로 만든 전신주와 계단 사이 빈 공간에 세운 그림 같은 집이 향수어린 분위기를 만들었고, 전날 밤부터 비에 흠뻑 젖었던 조승우는 곽재용 감독이 녹음해준 김창완의 옛 노래를 들으면서 당시의 정서를 체감하려고 노력했다. 60년대 풍경이 대부분을 이루는 지방촬영을 마치고 주로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돌며 90년대분을 촬영할 <클래식>은 내년 1월 말 개봉할 예정이다.사진 손홍주·글 김현정
(왼쪽부터 차례로)
♣ 주희가 사는 집의 세트는 어느 학교 운동장에서 골목으로 내려오는 계단 위에 얹혀졌다. 담쟁이덩굴과 장미꽃을 붙인 세심한 손길이 눈에 띈다.♣ 조승우와 손예진은 전날 밤부터 비를 맞으며 촬영을 강행했다. 두번 모두 가로등 불빛을 신호로 만나는 장면이었지만, 극적인 재회의 순간이었던 전날 밤과 달리 이날은 너무 빨리 다가온 이별을 연기했다.♣ 주희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준하. 곽재용 감독은 직접 조승우의 모자를 쓰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만남의 순간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