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드래곤>은 서구의 오래된 설화와 이를 집대성한 J. R. R. 톨킨의 <반지전쟁>, 그리고 70년대부터 미국 젊은이를 사로잡았던 카드 롤플레잉게임(RPG) <던전스 앤 드래곤스> 등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실제로 게리 가이객스의 작품인 원작 게임은 훗날 컴퓨터 시스템에 맞게 이식돼 <히어로스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을 비롯한 거의 모든 RPG의 원전이 됐다. 때문에 RPG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드래곤, 기사, 마법사는 물론이고 엘프, 드워프 등의 캐릭터에 친근함을 느낄 것이다. 영화의 전개 역시 롤플레잉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졸지에 정의의 기사가 된 리들리가 사브릴의 지팡이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과제를 해결해나가며, 이 과정에서 동료를 하나씩 얻어간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RPG의 문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던전 드래곤>은 젊은 관객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전설 속의 과거를 시대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캐릭터가 현대물에서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와 전반적인 분위기를 일거에 무너뜨린다. 대표적인 경우가 <무서운 영화>에서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관객의 폭소를 이끌었던 스네일스 역의 말론 웨이언즈. 영화의 맥락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싱거운 유머로 시종일관하는 그 덕택에 이 영화를 통해 심하게 ‘망가진’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조차 괜찮은 듯 느껴진다. 또 각각의 캐릭터에 개성을 불어넣지 못한 연출 때문에 이야기 역시 갈팡질팡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매력을 찾을 수 있다면, 전설 속 분위기를 잘 살려낸 정교한 컴퓨터그래픽과 풍성한 판타지의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문석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