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아직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책임을 지는 것이 온당한가, 라는 것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제기하는 문제라고들 말한다. 그럴까? 스필버그도 이 영화를 만들며 그 문제에 무게를 두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스필버그가 그랬다면,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잘못 만들어진 영화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사전범죄수사국이 처리한 사건들로만 판단할 때, 예지자들이 지목한 사람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법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사전범죄수사국이 맡는 범죄는 오직 살인죄다. 거의 모든 사회에서 살인은 가장 무거운 범죄로 간주되므로 그것은 그럴듯하다. 수사국 초창기에는 모살(謀殺)도 다루었으나 이내 고살(故殺)만을 다루게 됐다고 영화 속 수사관은 말한다. 모살과 고살은 사람을 죽일 꾀를 미리 짰느냐 여부로 구별된다. 윤리적 차원에서는 고살보다 모살에 쏟아지는 비난이 더 클 수 있지만 사회적 위험에서는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 우리 경우도 일제시대와 해방 뒤 한동안의 옛 형법에서는 이 둘을 구별했지만, 지금은 구별하지 않는다. 미국 형법에서는 murder와 manslaughter를 구분한다고 한다. 그러나 murder와 manslaughter가 모살과 고살에 정확히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murder는 살의(malice aforethought)를 지니고 저지른 살인이다. 그 살의가 반드시 살인 계획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murder에는 모살의 전부와 고살의 상당 부분이 포함된다. manslaughter는 순간적 흥분으로 일어난 살인과, 대륙법 체계에서 흔히 결과적 가중범으로 분류하는 상해치사나 폭행치사를 포함하는 듯하다. 사전범죄수사국이 영화의 현재 시점에서 주로 다루는 범죄는 murder 가운데 미리 계획되지 않은 살인과 manslaughter 가운데 순간적 흥분에 의한 살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얼추 우리 옛 형법의 고살에 해당한다. 그런데 수사국이 모살을 담당하지 않는 것은 창설 초기에 비해 ‘나와바리’가 좁혀져서가 아니라, 살인 계획 자체가 워싱턴에서는 짜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지자들의 능력이 잘 알려진 터라 아무도 살인 음모를 꾸미지 않는 것이다. 잡힐 줄 뻔히 알면서 살인을 계획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수사국이 체포하는 사람들은 과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가? 저질렀다. 범행 현장에서 체포되는 그들은 이미 살인미수죄를 저질렀다. 넓은 뜻의 미수에는 중지미수, 곧 (영화 속에서 수석 수사관 존 앤더튼이 일시적으로 그랬듯) 실행에 들어간 행위를 스스로 멈추거나 그 행위에 따른 결과가 생기는 것을 막아 범죄 완성을 중지한 경우도 포함되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수사관에게 체포되는 범죄자들은 모두 장애미수범 곧 좁은 뜻의 미수범이다. 그 가운데서도 착수미수 곧 범죄의 실행에 들어갔지만 자기 의사가 아닌 외부 사정의 방해로 예정된 행위를 전부 마치지 못한 경우다. 장애미수에는 착수미수말고도, 예정했던 행위는 모두 마쳤지만 바랐던 결과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를 가리키는 실행미수(종료미수)가 있다. 착수미수와 실행미수는 관념적 구분일 뿐 법적으로는 구별하지 않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대부분의 형법 체계에서 중지미수 곧 중지범과, 장애미수 곧 좁은 뜻의 미수범은 엄격히 구분한다. 중지범은 법관이 반드시 그 형을 줄여 가볍게 하거나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데 비해, 미수범에 대한 법정형은 기수범과 같고 다만 법관이 자유재량으로 그 형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형법을 포함해 거의 모든 형법이 살인죄의 미수범은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범죄자들은 모두 현장에서 체포된다. 예지자들이 범행 장소와 시간까지를 다 알려주기 때문이다. 예지자들에게서 끄집어낸 영상에 따라 특정한 시각에 특정한 장소로 수사관이 파견됐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범죄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누군가를 체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영화 속 상황만 놓고 볼 때 사전범죄수사국의 운영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형벌의 그로테스크함은 다른 문제다.
다만 영화 속 사례들과 달리 수사관이 ‘예정된 범죄자’를 미리 찾아내 범죄 실행 이전에 그를 체포한다면, 그것은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신비화된 예언의 불도저로 인간의 자유의지(의 가능성까지)를 샅샅이 밀어버리는 짓이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예지자들은 결정론의 화신이다. 그들은 라플라스가 상상했던 악마적 지성의 감각적 담지자들이고 언젠가 나타날지도 모를, 무한대의 계산을 순식간에 해낼 하이퍼-하이퍼 컴퓨터의 현신이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사전범죄수사국의 해체로 영화를 마무리함으로써 자유의지 편을 든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므로 자유의지에 따라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영화 속에서 예지자 애거서는 뜻밖에 이 편에 서 있다)과 그렇게 해서 바뀐 미래가 사실은 가능했던 유일한 미래라는 생각은 둘 다 그럴듯한 생각이다. 그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지를 누가 알랴? 그러자면 라플라스의 악마 이상의 지성이 필요한 것을.고종석/ 자유기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