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이 정글이라면, 변영주 감독은 맹수다. 감독이어서? 사탕발린 말이 아니다. 해가 구름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어슬렁어슬렁’ 현장을 거니는 여유로움. 좋은 먹잇감이 있나 두리번거리는 모습 같다(그는 실제 육식을 좋아하기도 한다). ‘슛’을 부르고 나서도 모니터 앞에 앉지 않는 것도 변 감독의 특징이다. 대신 카메라 곁에 바짝 붙어 선다. “배우들의 연기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배우는 저만치 멀찍이 떨어져 있다.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장면도 아니다. 저만치서 길을 건너다 슬쩍 얼굴을 돌리는 장면이다. 표정의 미동을 발견하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뭘 볼 수 있다는 것인가.
“할머니, 고기 사드려야겠네. 어머니, 잘하셨어요.” 세번의 테이크만에 오케이 싸인이 나자 변 감독은 여주인공인 미흔(김윤진)에게 가지 않고 멍하니 나물을 다듬던 할머니 세분에게로 맨 먼저 뛰어간다. 변 감독은 드라마를 찍되, 다큐멘터리의 긍정적인 관성을 애써 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가 모니터를 최종 확인용으로만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간과 인물, 인물과 인물의 감정 균형을 잡기 위해서 그는 카메라도, 모니터도 아닌 자신의 눈을, 감정을 신뢰한다. 김윤진, 이종원 두 배우에게서 미흔과 인규의 캐릭터를 끌어내려 하지 않고, 배우의 실제 모습 속에서 미흔과 인규의 모습을 ‘캡처’하려고 애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얼마 전 촬영했던 섹스장면에서도, 두 사람이 서로 싸우듯 격렬한 설정이었지만, 현장에서 이종원이 감정에 따라 눈물을 흘리도록 그대로 뒀다고 한다. 지극히 통속적인 불륜의 구도 아래서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밀애>는 8월 말까지 남해 촬영을 마치고 10월 중에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 이혜정·글 이영진
♣ 다른 여자를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고서 화를 내는 미흔의 손을 붙잡는 인규.♣폴란드 국립영화학교 우츠를 졸업한 권혁준 촬영감독(가운데)과 폴란드 스탭들. <나비>로 데뷔한 권 촬영감독은 남해는 너무 예쁜 곳이라 아무데나 카메라 들이대면 달력 사진처럼 찍힌다고. 그가 불러온 폴란드 스탭들은 남해에서 식빵과 감자로 버티고 있는 중.♣다른 여자와 게임을 즐기고 있는 인규. 그는 지금 자신을 지켜보는 미흔의 기운을 감지하고 있는 것일까.♣미흔에게 섹스는 하되 사랑을 하면 지는 게임을 제안한 인규.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는 장면을 미흔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