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제이(제이슨 뮤스)와 사일런트 밥(케빈 스미스)은 편의점 주변을 어슬렁대며 마약을 하거나 파는 게 낙. 점원들의 신고로 편의점 접근 금지령이 떨어져 상심한 그들에게, 친구 브로디(제이슨 리)는 아예 편의점을 사라고 제안한다. 친구 홀든(벤 애플렉)과 벤키(제이슨 리)가 그들을 모델로 그린 만화 <블런트맨과 크로닉>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며, 캐릭터 도용료를 제법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조언과 함께. 하지만 홀든의 판권까지 접수한 벤키는 영화제작자로 나서 이미 할리우드로 떠나고 없다. 게다가 인터넷상에서는 멍청한 만화와 캐릭터의 영화화는 물론, 제이와 밥에 대한 비난이 난무한다. 실추된 명예를 되찾으려면 영화제작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두 친구는 할리우드로 향한다.
■ Review
못 말리는 녀석들이 돌아왔다. 마약쟁이이자 어설픈 마약상, 하릴없이 편의점 앞에 죽치고 서서 시간을 때우기 일쑤인 백수들 제이와 사일런트 밥. <제이와 사일런트 밥>은 뭐 재미난 일 없을까 하고 여전히 편의점을 배회하던 이들이 벌이는 황당무계한 모험담이다. 자신들의 캐릭터에 바탕한 만화의 영화화 소식에 분개한 네티즌들에게 욕을 먹자, 영화제작을 중단시키기 위해 할리우드로 쳐들어간다니. 실제 두 캐릭터에 대한 영화인 <제이와…>는, 그러니까 스스로의 탄생 비화 비슷한 소재를 ‘제 얼굴에 침 뱉기’식의 희화화와 패러디로 비튼 코미디다. 영락없이 케빈 스미스다운, 케빈 스미스의 영화.
따라서 케빈 스미스나 제이와 사일런트 밥이 금시초문이라면, 이 영화를 봐야 할지 어쩔지 잠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떠버리 욕쟁이 제이와 과묵하기 짝이 없는 사일런트 밥은 스미스의 영화우주에 상주해온 감초이자 그의 페르소나에 다름 아니기 때문. 둘을 앞세운 <제이와…>는 스미스가 밝혔듯, <점원들>부터 <섀넌 도허티의 몰래츠> <체이싱 아미> <도그마>에 이르는 이른바 뉴저지 연작의 완결편과 같다. “아주 먼 옛날 편의점 앞에서…”라는 자막과 함께 1970년대의 뉴저지, 편의점 ‘퀵스톱’ 앞에서 아기 제이와 밥의 첫 만남을 보여주는 서두부터, 영화는 전작의 세계에 이어져 있다. <스타워즈>를 흉내낸 이 장면은 영화마다 <스타워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던 스미스가 바치는 또 한번의 오마주. 물건을 훔치러 ‘퀵스톱’에 들어간 엄마를 기다리며 유모차에 앉은 멍청한 짝패의 조우는 그냥 봐도 웃기지만, ‘퀵스톱’이 <점원들>을 비롯한 스미스의 영화에 번번이 등장하는 무대이자 그들 평생의 아지트임을 숙지한 관객에게는 그 세계의 일원이 된 듯한 공유의 쾌감이 배가된다.
이같은 쾌감은 <제이와…>의 웃음을 끌어가는 주무기. 완결편답게 이 영화는 전작들을 종합한 엔터테인먼트를 내세운다. 제이와 사일런트 밥을 편의점에서 쫓아내는 직원 단테와 친구 랜달은 <점원들>의 주인공이었으며, 브로디는 <…몰래츠>의 만화광, 홀든은 <체이싱 아미>에서 레즈비언인 알리사와 사랑에 빠졌던 만화가다. 스미스의 전작들에 등장한 캐릭터와 배우들, 특유의 외설스럽고 바보 같은 농담의 변주가 넘치는 소우주. “대부분의 영화는 모든 이를 위해 만들어진다. 케빈 스미스의 영화는 확실히 당신을 위해 만들어졌거나, 절대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거나”라는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평대로, <제이와…>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그 세계에서 파생된 백과사전 지식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 쉴새없이 떠드는 제이와. 이번에도 러닝타임의 1시간이 지나서야 입을 여는 사일런트 밥. 특별한 목표없이 살아가던 이들은, 홀든의 집에서 인터넷 사이트에 오른 악담을 보고 할리우드로 향한다.(왼쪽부터 첫번째, 두번째)♣ `쭉쭉빵빵` 미녀와의 섹스만 생각하던 제이가 사랑에 빠질줄이야(세번째)♣ 상대는 <미녀삼총사 같은 강도단의 일원 저스티스(네번째)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미라맥스가 2천만달러를 들여 이 영화를 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미스 영화백과사전’ 없이도, 영화는 시종일관 낄낄거리며 즐길 여지를 준다. 제이와 밥이 동물 보호주의자를 가장한 4인조 다이아몬드 도둑을 만나고, 저스티스에게 반해 제약회사의 실험대상인 오랑우탄을 ‘해방’시키면서 수배 대상이 된다는 황당한 상상력도 그중 하나. 저스티스가 처음 등장할 때 제이의 포르노 같은 상상을 보여준다든지, 흡사 <미녀 삼총사> 같은 저스티스 일행이 <엔트랩먼트>와 <매트릭스> 같은 묘기로 감시광선을 피해 다이아몬드를 훔치고, 제이와 밥이 <도망자>의 해리슨 포드가 뛰어내렸던 것 같은 댐으로 내몰리는 등 대중문화를 총망라한 오마주와 패러디, 사춘기 남자애들 같은 음담패설과 게이 및 흑인을 둘러싼 편견에 대한 일침까지 엔도르핀으로 버무린 스미스의 불경스런 유머감각도 맛깔스럽다.
특히 영화는 요설과 유머의 주된 재료. 영화 속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로 설정된 미라맥스를 “걔네는 <피아노>나 <크라잉 게임>처럼 고급스런 영화만 찍는 줄 알았는데”, “근데 <쉬즈 올 댓> 같은 영화를 만들면서부터 내리막길이야”라고 비꼬는 식이다. 극중에서 <굿 윌 헌팅2>를 찍는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은 자신들이 함께 나온 <도그마>를 “망했다”고 들먹거리는가 하면, 어떻게 <레인디어 게임> 같은 영화를 찍을 수 있냐며 서로의 출연작을 헐뜯는다. 자신의 이미지를 기꺼이 희생하는 스타급 카메오들의 활약에는 포복절도할 법하다. 인물들이 “제이와 사일런트 밥에 대한 영화? 누가 그런 영화를 돈내고 보겠냐?”며 스크린 밖의 관객을 보듯 카메라를 주시하는 장면처럼, 자기 자신의 영화까지 서슴없이 웃음의 도마에 올리는 스미스의 코미디는 좀처럼 점잔을 빼지 않는다. 호의적인 에버트의 평과 달리 <뉴욕타임스>나 <빌리지 보이스>에서는 10대 남자애들이나 좋아할 영화라고 했지만, 유치할지언정 경직되지 않은 웃음이 유쾌한 영화다. 황혜림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