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이 수그러지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의 교정, 잔디밭에 앉아 있는 두 남녀. “너 가방에 책 많지? 제일 두꺼운 책으로 한권 줘봐.” 그녀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가 가방을 뒤지더니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꺼낸다. “딱 좋아. 맘에 들어.” “빌려줄 테니까 읽어봐” 하고 그가 말을 맺기도 전에 책을 베개 삼아 드러눕는 그녀. 터키와 한국의 월드컵 3∼4위전을 몇 시간 앞둔 6월29일, 희진과 지석의 첫 데이트는 그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며 혀끝에 단맛을 남기는 마들렌빵 같은 사랑 이야기의 시작이다.

컷 사인이 떨어지면 부지런히 달려와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두 배우는 신민아와 조인성. 영화가 처음인 조인성보다는 <화산고>를 거친 신민아가 좀더 여유있어 보이지만, 두 사람의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둘다 긴장을 늦추지 않는 표정이다. <마들렌>은 미용실 헤어디자이너인 희진과 소설가 지망생인 대학생 지석, 우연히 재회한 두 중학교 동창의 연애담. 이날 아침 9시부터 고려대에서 촬영에 들어간 둘의 첫 데이트는, 해가 질 무렵까지 계속됐다. <퇴마록> 이후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박광춘 감독은, 감정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대사의 톤까지 꼼꼼히 체크해가며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성큼 다가온 더위에 얼음주머니와 죠스바가 동원되기도 했지만, 배우와 스탭들은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오케이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땀을 흘렸다.

한달가량 지난 7월24일 밤 이화동 골목, 지석과 희진이 새벽 신문 배달에 나섰다가 선배 만호(김수로)를 만나 마들렌빵을 얻어먹는 장면을 찍으면서 촬영은 25% 정도 진행됐다. 여름 공기는 한결 더워졌지만, “역시 현장이 좋다”는 감독도, 스탭들도 이미 <마들렌>의 느리고 세심한 촬영 리듬에 익숙해진 분위기. 파나비전 카메라에 담기는 두 남녀의 아기자기한 연애담은, 가을경 극장가를 찾아갈 예정이다. 글 황혜림·사진 손홍주, 이혜정

♣ 배우들에게 연기지도를 하고 있는 박광춘 감독. <논스톱>의 코믹 연기에 익숙한 조인성에게 무게감을 주문한다.♣ 중학교 동창이었다가 대학생과 헤어디자이너로 다시 만난 지석과 희진. <마들렌>은 두 사람의 연애를 다룬 멜로다.♣ 김수로는 조인성의 선배 만호로 등장, 함게 마들렌빵을 먹는다고.♣ 촬영장은 쉬지 않는다? 스탭들인들 경기를 보고 싶지 않겠느냐만, 한국과 터키의 경기가 열리는 이날도 촬영은 계속됐다.♣ 헤어디자이너와 대학생의 캠퍼스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