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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삼류인생에도 사랑은 있다
2001-03-28

<파이란> 촬영현장

인천의 신포동 거리, 과거 ‘중국인 거리’로 알려진 이곳에서 <파이란>의 막바지 촬영이 진행되었다. <북경반점>의 중국음식점으로 쓰인 건물과도

가까운 이곳은 한세기전 서해를 건너온 중국인들이 처음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지금은 공장지대로 둘러싸여 바다 내음조차도 맡을 수 없는 곳이

됐다. 제작팀은 이곳의 한 창고를 빌려 비디오테이프와 만화책들을 사다 빼곡이 채워 주인공 강재의 비디오 대여점을 완성했다. 원래 보름 기한으로

임대를 했지만, 올겨울 유난히도 많이 내린 눈이 촬영을 방해하는 바람에 이곳은 두달 이상 비디오가게로 남아 있다. 이제는 오가는 주민들마저도

진짜 비디오가게로 알 정도다.

가게와 가게 주변은 모두 강재의 생활터. 이날 촬영은 강재(최민식)가 불법포르노비디오를 유통시키다가 경찰에게 연행되는 장면이다. 최민식은 촬영이

연일 지속되어 지칠 법도 하건만 아침부터 나와서 쉬지도 않고 단역배우들과 촬영장면을 연습하고 있었다. 아직 연기가 어색한 중학생 배우에게 대사가

씹히지 않도록 말하는 법과 연기의 이동방향까지 지도했다. 심지어 취재온 사진기자들을 위해 여러 번의 리허설까지 해주었다. 오락실과 비디오가게를

전전하며 시시껄렁한 생활을 하는 강재에게도 아내가 있다. 중국 여인 파이란(장백지)의 취업을 위한 위장결혼이지만. 영화에서 이강재와 애절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장백지.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녀에게 한국은 낮선 땅이다. 꽉 찬 일정(홍콩에서만도 두개의 영화를 찍고 있는 중이다)과

홍콩과는 다른 추운 날씨 탓에 장백지는 몸이 쇠약해져 토하기까지 해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 현실과 영화의 중첩이 그녀의 연기에 무거운

실감을 얹어놓는다.

<파이란>은 뒷골목 삼류인생의 진한 삶과 사랑을 그리는 멜로영화로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다. <철도원>의

원작자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 ‘러브레터’를 각색했고, 우리 자본과 홍콩 인기스타 장백지를 투입해 만든 범아시아 프로젝트. 송해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아시아 최대 배급사인 골든하베스트를 통해 홍콩, 중국, 대만, 싱카포르, 필리핀 등 아시아 5개국에 통산 30만달러의 사전

판권 계약이 성사된 상태. 튜브 픽쳐스의 창립작품으로 약 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자된 <파이란>은 지난해 12월 크랭크인해 강원도와 인천을 오가며

촬영을 진행했고 후반작업을 거쳐 4월28일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글 이혜정 기자 [email protected]

◀인형뽑기로 당첨된 토스터를 들고 유유히 걸어가는 강재.

◀비디오가게 앞에서 파이란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스탭들. 외국배우가 우리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빠질 수 없는 스탭 중 하나가 통역이다. 통역

하정인씨가 장백지에게 촬영장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