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즈윅의 <영광의 깃발>이 남북 전쟁에 소수자로 참전한 흑인 병사들의 기억을 복구했다면, 오우삼의 <윈드토커>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다. <윈드토커>가 망각으로부터 불러낸 용사들은 나바호 인디언 혈통의 병사들.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군에 의해 암호 체계에 구멍이 뚫려 고심하던 미국은 나바호 인디언의 언어를 바탕으로 만든 신종 암호를 개발하고 나바호족 출신 병사들을 ‘윈드토커’라고 불리는 암호병으로 태평양 전선에 투입한다. 부하들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전투의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조 앤더슨 상사(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암호병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앤더슨과 부대원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은 암호병이 아니라 암호다. 그 대가는 윈드토커들의 목숨도 포함한다.
의리와 의무의 틈새에 낀 남자의 딜레마. 오우삼 감독의 유서 깊은 테마는 <윈드토커>의 고막을 찢는 폭음 속에서 또 한번 변주된다. 앤더슨은 자신들의 임무가 암시하는 바를 짐작하고 동료들에게 암호병과 너무 가까워지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서로를 알아보는 ‘진짜 사나이’들은 그만 선을 넘어 마음을 나누고 만다. 나바호 인디언 플루트와 하모니카의 멜로디는 피비린내 스민 전장의 슬픈 바람 속에서 하나로 섞인다.
실화에 바탕하고 메시지를 앞세운 전쟁드라마이긴 하지만, 액션 안무와 폭력의 리얼리티도 불꽃놀이를 벌일 전망. 하긴 격투의 시학을 고집스럽게 연구해온 오우삼 감독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 <블랙 호크 다운> <위 워 솔저스>에 지고 싶을 리 없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