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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올해의 칸영화제 키워드,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송경원 2023-05-26

올드보이 총집결

올드보이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76회 칸영화제 경쟁작은 칸의 가족, 단골 손님들이 한번에 집결한 모양새다. 일단 21편의 경쟁 후보 중 <몬스터>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 브라이터 투모로>의 난니 모레티, <디 올드 오크>의 켄 로치, <어바웃 드라이 그래시스>의 누리 빌게 제일란, <퍼펙트 데이>의 빔 벤더스까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의 신작만 5편이다. 특히 86살의 켄 로치는 역대 최다인 15번의 진출 기록을 세웠다(난니 모레티는 8번, 빔 벤더스는 10번째 칸 경쟁부문 초청이다). 무엇보다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17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두번 수상한 만큼 최초의 3관왕 감독이 될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그 밖에도 84살의 이탈리아 노장 마르코 벨로치오의 <키드냅>,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감독 카트린 브레야의 <라스트 서머>, 핀란드영화의 대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폴른 리브스> 등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 없다. 올드보이들은 경쟁부문에서만 활약하는 게 아니다. 마틴 스코세이지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을 들고 칸을 찾는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1976년 <택시 드라이버>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1998년 심사위원장도 역임했다. 아마도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 중 가장 긴 상영시간(3시간46분)으로,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과정을 다룬다. 15년 만에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의 속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도 칸에서 최초 공개된다. 비록 스티븐 스필버그제임스 맨골드에게 연출을 넘겼지만 80살의 해리슨 포드는 여전히 건재하다.

반갑거나 새롭거나

오랜만에 돌아온 반가운 얼굴과 새로운 면면도 만만치 않다. 경쟁부문에선 <언더 더 스킨> 이후 무려 9년 만에 조너선 글레이저가 신작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돌아왔다.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인근을 배경으로 나치 장교와 유대인 여성 사이의 위험한 로맨스와 복잡한 삼각관계를 그린 파격적인 작품이다. 경쟁 후보 선정 당시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더욱 기대를 모은다. 데뷔작 <그린파파야 향기>(1994)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홍도 <포토푀>로 오랜만에 칸을 찾았다. 1885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미식가와 요리사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로 쥘리에트 비노슈브누아 마지멜이 <세기의 아이들> 이후 24년 만에 호흡을 맞춘다. 한편 프랑스의 신예 라마타 툴라예 사이는 경쟁부문에서 유일한 장편 데뷔작 <바넬과 아다마>를 선보인다. 세네갈 북부 외딴 마을에서 살고 있는 젊은 부부가 마을의 관습과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저스트 필리포 감독의 <애시드>도 주목할 만하다. 2020년 첫 장편 <라 누에>로 칸 비평가 주간에 선정된 바 있는 젊은 감독은 성공적인 데뷔의 에너지를 이어받아 완성한 두 번째 작품을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세션에 공개한다. 기후 문제와 관련한 공포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2018년 자신의 단편을 장편화했다. 재능 있고 젊은 영화인을 발굴하기 위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는 취지에 걸맞게 첫 장편영화가 8편이 초청됐다. 몰리 매닝 워커의 <하우 투 해브 섹스>, 델핀 델로겟의 <잃을 게 없다> 등이 화제작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홍사빈, 송중기 배우가 주연을 맡은 김창훈 감독의 <화란>도 소개된다.

여성과 다양성 vs 백래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부족하다는 건 꾸준히 지적되어왔다. 올해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경쟁부문 후보 21편 중 여성감독의 영화가 7편이 선정되어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알리체 로르와커의 <라 키메라>, 예시카 하우스너의 <클럽 제로>,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포 도터스>, 카트린 브레야의 <라스트 서머>, 카트린 코르지니의 <홈커밍>, 쥐스틴 트리에의 <아나토미 오브 어 폴>, 라마타 툴라예 사이의 <바넬과 아다마>가 그 주인공이다. 칸 공식 포스터의 주인공이 카트린 드뇌브였고 그의 딸 키아라 마스트로이안니가 개폐막식 사회를 맡는 등 크고 작은 부분에서 공을 들인 것이 감지된다. 심지어 칸의 첫 여성집행위원장으로 프랑스 워너브러더스의 전 대표인 이리스 크노블로흐가 취임했다. 하지만 일련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선택으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우선 개막작인 마이웬 감독의 <잔 뒤 바리>는 배우 조니 뎁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가정 폭력 혐의로 오랜 법정공방을 치른 조니 뎁은 지난해 앰버 허드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재판에서는 승소했지만 ‘아내 폭행범’이라는 지칭을 둘러싼 영국 매체 <더 선>과의 공방에서는 패소했다. “영화계가 성 범죄자들을 전반적으로 감싸려 한다”는 프랑스 배우 아델 에넬의 비판을 비롯하여 칸이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일각의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개막식 전날 15일 기자회견에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리모는 “난 배우로서 조니 뎁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며 법적 테두리 안에서 문제가 없는 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고수했다.

고다르, 클래식, 시네마 vs <더 아이돌>

칸영화제는 (당연하게도)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을 우선시해왔다. 드레스 코드를 비롯한 온갖 거추장스러운 격식은 영화를 향한 존중과 예의의 고지식한 표현이기도 하다. 2018년 넷플릭스 등 OTT와 갈등을 빚으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를 베니스국제영화제에 내주기도 했다. 이러한 칸의 고집은 칸 클래식 부문에서 빛을 발한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무네카타 자매들>(1950), 만 레이 감독의 <리턴 오브 리즌>(1923) 복원판,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스펠바운드>(1945) 등 고전 걸작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클래식 부문의 정점은 장뤽 고다르의 유작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영화의 영화 발표: 퍼니 워즈>다. 과거의 영화 촬영 장소로 다시 돌아가 진실한 언어의 변형과 은유를 추적하는 20분가량의 짧은 이 단편은 지난해 작고한 장뤽 고다르 최후의 영화 제스처라 할 만한다. 2018년 칸영화제 특별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한 장뤽 고다르에 대한 존경과 헌사를 담은 프로그램은 칸영화제의 본질을 증명한다. 동시에 2018년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걷는 칸영화제가 있다. 비경쟁부문 상영이 확정된 샘 레빈슨 연출의 미국 드라마 <더 아이돌>이다. 2022년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이 마 베프>를 비롯해 지난 몇년간 칸영화제는 TV시리즈에 문을 열어왔다. 올해도 이런 흐름이 한층 강화되는 가운데 신임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한 이리스 크노블로흐의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오랜 기간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프랑스 지사에서 근무한 그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사업, 특히 대형 할리우드 스튜디오들과 강력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에 대한 우 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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