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5일, 조종국 부산영화제 운영위원장 위촉과 허문영 집행위원장 사임에 얽힌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 이용관 이사장이 조기 퇴진 의사를 밝혔다. 간담회가 끝난 직후 이용관 이사장은 <씨네21>을 만나 보다 자세한 심경을 전해주었다. 사직서 제출 후 당분간 쉬고 싶다는 뜻을 밝힌 허문영 집행위원장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 허문영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 그전에도 지쳤다는 말을 자주 꺼냈다. 일단 올해 영화제까지만 치르고 내년에 같이 나가든지 하자고 했다. 그런데 도저히 영화제 일을 더 못하겠다며 그만두겠다고 사임 의사를 밝힌 거다. 2주 동안 쉰 후 돌아와서 만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해한다고, 푹 쉬고 와서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 그리고 오늘(5월15일) 부산 지역 기자간담회에서 이사장직을 그만두겠다고 스스로 밝혔다.
= 원래 올해를 마지막으로 영화제를 그만두겠다고 영화제 안팎에 얘기해왔다. 대신 영화제를 이끌어갈 사람을 찾기 위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도 만나고 다녔다. 좋은 분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고 다녔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인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서 상당한 오해와 억측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진실을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영화제에서 불거진 논란은 근본적으로 영화제를 이끄는 이사장이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이사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감수하고자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원래 계획에 있던 일인데, ‘오비이락’이다. 내가 영화제를 그만둔 후에도 원하는 사람을 자리에 둬서 권력을 세습하려고 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새로운 이사장은 공모제를 통해 뽑힐 것이다. 이미 이사회에서 논의했듯 이사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 정황상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조종국 운영위원장 위촉으로 인한 결과로 보인다. 운영위원장 임명에 집행위원장의 충분한 동의가 있었나.
= 동의했다. 충분한 근거 자료가 있다. 내가 부산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으로서 김동호 이사장을 모셨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내부의 회계나 사무는 전문성이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이 외부 네트워크 형성을 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부분은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하더라. 내가 만들고자 하는 직책은 사실상 사무총장에 가깝지만 사단법인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운영위원장을 새로 두려고 하는 것이고, 베를린국제영화제나 토론토국제영화제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알겠다고 하더라. 그때 조종국 전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을 운영위원장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운영위원장의 필요성에 합의했기 때문에 인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강승아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과 오석근 부산영화제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위원장을 만나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하자고 답했다고 전해 들었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운영위원장 임명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여부를 묻는다면,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직접 만나서 그의 얘기를 들어야 알 수 있는데 지금은 지쳤다는 것 외에는 자신의 심경을 밝힌 바가 없다.
-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암묵적 동의가 아닌 원만한 합의를 거친 게 맞나.
= 암묵적 동의에 그쳤다면 이렇게 일을 진행할 수 없다. 이사회는 이사장이 여는 것이고, 임시총회는 집행위원장이 안건을 올려야 열릴 수 있다. 이를테면 올해 영화제 사업 방향은 이사장이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위원장이 제시하는 것이다. 다만 예산 문제로 이견이 있었던 것은 맞다. 14년째 부산영화제 예산이 동결 상태인데, 지출은 자꾸 커지고 새롭게 수입을 창출할 창구는 확보하지 못했다. 회원제로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우리는 큰 사업을 벌일 재주가 없다. 그래서 이런 일을 잘할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자고 한 것이다.
- 임시총회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운영위원장 임명건에 대해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고 들었다. 4개 단체를 대표해 참석한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가 발언했다.
= 규정상 집행위원장은 이사장이 추천하게끔 되어 있다. 정관을 발동한 것뿐이지 이를 하나하나 영화인들과 의논하고 합의할 수는 없다. 영화인 개개인마다 생각이 다 다를 텐데 어떻게 하나하나 조율하겠나. 대신 영화계를 대표하는 분들이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와 있는 것이다. 집행위원장이라는 표현 대신 운영위원장이라는 직명을 사용하는 것으로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고,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건이 가결됐다. 최정화 대표의 말을 듣고 나중에 민규동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대표,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등 집행위원들과 직접 통화했다. 공동 집행위원장이 아닌 운영위원장이라는 점을 못박고, 사무총장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내가 실수한 것이 있다면 집행위원들을 만나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이다. 안건으로 미리 공유가 됐기 때문에 임시총회 자리에서 함께 논의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 사무행정과 대외적인 네트워크 분리는 오래전부터 논의했다고 하지만, ‘공동 집행위원장 선출’이라는 안건 및 정관을 수정한 것은 영화인들이 문제를 제기한 시점 이후 아닌가.
= 아니다. 총회가 아닌 이사회에서 먼저 집행위원회 운영 규정 문구가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공동 집행위원장을 두지만 최종 결재는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하도록 하고 싶었는데, 이사회에서 지금 표현대로라면 해석이 갈릴 수 있다면서 ‘운영위원장’이라는 직명을 사용하는 사람이 ‘법인 운영 및 영화제, 마켓 등의 일반 사무, 행정, 예산 등을 총괄’하는 것으로 문맥을 수정하기로 합의했다.
- 오늘 기자간담회에서 이사장이 추진하던 제도 개선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언급됐다.
= 28년 동안 관례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좋은 점도 안 좋은 점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문제점이 한계에 도달했다. 부산영화제에는 계약을 담당하는 별도 부서가 없다. 당사자가 직접 계약하는 게 관행이 되다 보니 형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가 감지된다. 중간 결재를 건너뛴다든지 하는 구멍도 생긴다. 그래서 이사장 직권으로 전수 분석을 진행하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도를 고치려고 한 것이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 영화제 직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영화제 정상화라는 선물을 주고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잔소리로 듣지 말고 나의 퇴임사로 알아달라는 표현까지 썼다. 내부 동의를 얻어서 진행했고, 이건 스탭이 아닌 집행부의 잘못이기 때문에 징계를 주자는 목적도 아니었다. 그런데 일부 인사 발령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내가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기 위해 지시한 것이라고 몰아갔다. 심지어 고용노동부에 나를 고발해서 지금 조사도 받아야 한다. 내가 영화제 사유화를 위해 독재를 하고 있다며 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냈고, 마치 이 사안이 허문영 집행위원장 사임과 관련 있는 것처럼 보도됐다.
- 조종국 운영위원장이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을 거쳤다는 이력 외에 그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판단한 이유가 무엇인가.
= 부산영화제에서 일할 때 정책을 담당했고, 그가 부산영상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에 있을 때도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전략적인 면에서 능력 있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어떤 사안이 있을 때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 명쾌하게 알려준다. 다만 부산 지역 영화인들과 서울의 일부 영화인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는데, 그가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 조종국 운영위원장이 ‘이용관 라인’이기 때문에 임명됐다는 얘기도 있는데.
= ‘이용관 라인’이 맞다. 그리고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내 라인이 아니냐고 질문하고 싶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을 직접 모셔온 사람이 바로 나다. 허문영 집행위원장과 조종국 운영위원장은 <씨네21>에서 함께 일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들은 모두 ‘<씨네21>파’인가? 인사가 어떤 라인 위주로 가는 것이 우려된다면 공모제로 전환하면 된다.
- 조종국 운영위원장을 사무국장으로 임명했다면 지금만큼 반발이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사무국장은 영화제 내부에서 실무를 맡으며 점진적으로 승진해온 사람이 맡아야 한다. 외부 인력을 들여올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무국장은 주어진 예산을 집행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부산시나 스폰서와 잘 소통하면서 더 큰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연륜 있는 사람을 운영위원장으로 데려오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 건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인가.
= 이사회나 총회에서는 이미 가결된 사안을 왜 다시 무효화하느냐고 할 것이다. 이미 결정된 내용을 바로 무를 수는 없다. 영화인들과 만나서 논의하다 보면 새로운 단서 조항을 둔다든지 다른 묘안이 나올 수도 있다.
-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염두에 두고 있는 다른 집행위원장 후보가 있나.
= 정 힘들면 일단 올해까지만 치르고 내년에 함께 영화제를 그만두자고 다시 그를 설득하려고 한다. 어차피 나도 이사회 결재를 받아야 사임할 수 있고,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사임은 내가 결재해야 한다. 오늘 한국영화제작가협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허문영 집행위원장을 복귀시키라고 하던데, 나도 그러고 싶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을 복귀시키기 위한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을 복귀시키겠다고 확언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끝까지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가 집행위원장을 대행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 올해 영화제가 열리기 전에 이사장직을 그만둘 수도 있나.
= 그건 아닐 것 같다. 어쨌든 올해 영화제는 치르고 나가는 게 맞다. 지금 제도 개선을 시작하면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가능하면 이 일을 모두 마치고 나가고 싶다. 이사회를 열고 이번 사태를 수습해나가면서 영화인들과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영화제 내부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고 5개월 앞둔 영화제를 잘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