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5개월을 앞둔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내홍을 겪고 있다. 5월9일 부산영화제 1차 임시총회에서 조종국 부산영화제 운영위원장 임명이 가결됐다. 그리고 이틀 후 허문영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와 관련해 영화제가 ‘이용관 라인’ 중심으로 꾸려지고 권력이 세습화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부산영화제는 5월15일 부산 지역 언론사를 대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용관 부산영화제 이사장은 사유화 논란을 정면 반박하며 이번 사태가 해결되고 나면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지금 부산영화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사안별로 정리했다.
조종국 운영위원장 위촉과 허문영 집행위원장 사임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 없다. 하지만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이 가결된 이사회 및 임시총회로부터 이틀 후 그가 사직서를 제출한 정황이 그 배경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5월15일 부산영화평론가협회는 “운영위원장이라는 직책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임시총회까지 열어 운영위원장 자리를 만들었다”며 “이렇게 위촉된 조종국씨가 이용관 이사장과 함께해왔던 속칭 ‘이용관 라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은 더욱 문제”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집행위원장이 행정이나 예산 부분에 관여할 수 없다면, 영화제의 실권은 사실상 이사장의 측근인 운영위원장이 쥐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며 업무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영화제측의 해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같은 날 한국영화제작가협회도 “부산영화제는 잘못된 결정을 철회하고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복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했다. 이들은 이용관 이사장이 “조직이 커진 영화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결정으로 허 위원장과도 논의를 마친 사안”이라고 설명한 것은 결국 집행위원장이 사임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으며, 사임의 원인이 운영위원장 위촉에 있다고 주장했다.
영화단체의 문제 제기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네개 영화단체를 대표하는 집행위원들은 임시총회 안건 중 하나인 공동 집행위원장 선출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공동 체제로 전환하는 중요한 사안에 사전 설명 없이 이미 지명한 인물의 승인을 요구하는 안을 총회에 상정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네개의 영화단체는 5월9일 임시총회에 앞서 열리는 이사회에서 해당 안에 대한 상정을 취소할 것을 함께 요구했다. 정관에 집행위원장을 2인 이하로 둘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공동 체제를 바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운영위원장이란 직함은 정관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내치와 살림 등을 맡는 사무국장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운영위원장 자리를 새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하지만 총회에 참석한 집행위원들은 이사회를 통해 정관을 먼저 수정한 데다 부산영화제의 규모를 감안했을 때 경험이 많지 않은 신임 사무국장 외에 운영위원장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받아들였고,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 가결에 동의했다.
운영위원장 직위 신설과 정관 개정
부산영화제 집행위원회 운영 규정 제6조는 집행위원장이 2인일 경우를 명시한다. 기존 정관에 언급되지 않는 운영위원장 직위를 논의한 근거는 기존 집행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2인의 집행위원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부산영화제는 조종국 운영위원장 위촉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초청작 선정과 영화제 행사 기획을 총괄하여 한국과 아시아의 유망한 감독과 작품을 발굴해내고 전세계 영화의 큰 흐름을 조망하는 데 집중해나갈 것이며, 조종국 운영위원장은 법인 운영 및 일반 사무, 행정, 예산을 총괄하며 조직 운영에 내실을 기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각자의 직무를 분장했다. 그리고 5월9일 열린 이사회에서 정관을 개정하면서 ‘운영위원장’의 직함을 공식적으로 포함시켰다. 이용관 이사장은 정관을 개정했기 때문에 조종국 운영위원장이 공동 집행위원장의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라고 집행위원들에게 설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개정된 정관에서 여전히 운영위원장을 집행위원장에 포함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총회 자리에서 영화단체를 대표해 참석한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가 운영위원장 직제에 관한 추가 정관 개정을 검토하고 향후 규칙 및 지침을 통해 운영위원장의 한계를 명확히 규정할 것을 요청했다.
이사장 조기 퇴진과 사유화 반박
이용관 부산영화제 이사장은 2022년 2월20일 <국제신문>을 통해 “이사장 임기 4년을 다 채우지 않을 생각이다. 빠르면 1~2년, 늦어도 3년 뒤 물러날 것”이라며 조기 퇴진 의사를 밝힌 바가 있다. 임시총회에서 이사장 4년 연임을 확정한 바로 다음달이었다. 그리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는 이번 사태가 해결되면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런 사태를 야기한 모든 근원이 영화제를 책임지고 있는 이사장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의를 표명하고자 한다.” 이용관 이사장은 그가 ‘이용관 라인’을 수뇌부에 앉혀 영화제를 사유화하고자 한다는 의혹을 전면 반박하며, 그렇다면 자신이 왜 영화제를 떠나겠다고 표명하고 미래의 영화제를 이끌어줄 분들과 만남을 가져왔겠냐며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반문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태 해결 이후’라는 표현은 모호하다는 점을 꼬집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후임자를 앉힌다면 여전히 권력 세습의 가능성이 잔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만한 합의’에 대한 의견 차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과 관련해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동의가 있었는가 여부에 대해서는 이사장과 일부 영화제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이용관 이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동의가 있었다는 근거가 충분하며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오석근 부산영화제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위원장 역시 “베를린국제영화제 출장을 가기 며칠 전 나와 강승아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 허문영 집행위원장을 만나 운영위원장과 후보자에 대해 말씀드렸다”고 설명하며 이후 이사장실에서 운영위원장 직위의 당위성에 대해 집행위원장이 인정하는 절차를 밟았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한 영화제 관계자는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 계획을 강승아 부집행위원장과 오석근 위원장을 통해 처음 전해 들었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중요한 제안을 이사장이 없는 자리에서 한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또한 운영위원장직을 신설하는 것보다는 사무총장이 적합하지 않느냐고 제안하며 온건한 반대 의사를 전했다고 알고 있다. 집행위원장 없이 그의 임명을 추천한 것 자체가 애초에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국제신문>은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사의 표명이 알려진 직후 열린 영화제 임직원 간담회 내용을 근거로 내세웠다. 해당 매체는 그들이 확보한 녹취록에 따르면 오석근 위원장이 임직원들에게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운영위원장 도입에는 찬성했으나 조종국 후보자 임명에 대해서는 반대”했으며 “운영위원장(도입)과 예산 전반은 본인의 의지대로 한 게 아니다. 이사장이 일방적으로 한 부분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고 인용했다.
합의된 절차의 수행 보고서 작성 및 인사 갈등
이용관 이사장은 수의계약(매매·대차·도급 등을 계약할 때 적당한 상대방을 임의로 선택하여 맺는 계약) 비중이 높은 점을 포함해 부산영화제가 관행적으로 해오던 업무 방식을 전면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영화제에서 외부 업체에 의뢰해 작성한 ‘합의된 절차의 수행 보고서’ 및 감사팀장의 도입은 이사장 직권으로 진행한 것이다. 강승아 부집행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사장과 집행부의 합의를 거쳐 계약 체결 과정의 투명성과 합리성 제고를 위해 2022년 예산 품의서 289건의 프로세스를 점검했고, 계약 적정성을 검토하는 부서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영화제 수뇌부가 밝힌, 제도 전면 개정 및 조직 개편안을 도출해 내부 통제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게 된 배경이다.
기자간담회 자리에 등장한 부산영화제 직원 두명은 이사장 및 기자들에게 최근 일부 인사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호소했고,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사임을 포함한 최근 영화제 내부 갈등의 배경에는 ‘찍어 내리기식 인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용관 이사장은 정관상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동의 없이 인사가 진행될 수 없으며 그가 최종 결정을 했기 때문에 진행된 건이라고 해명했다. 부산영화제 30주년을 앞두고 변화와 쇄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의 배경에는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영화제의 의의를 다시 질문하는 시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화제 조직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 이어지는 기사에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인터뷰가 계속됩니다.